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야 Nov 01. 2023

첫사랑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면 1

사랑은 타이밍이다 


이 이야긴 좀 지루할지도 모를 이야기이다. 


짝사랑의 어리석음을 논하자면 절대 빠질 수 없는 시작이 있다. 자아가 생기고 난생처음 좋아했던 친구.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첫사랑'인 줄 알았던 '풋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졸업한 지 한참 후에도 1년마다 한 번씩 꿈에 나타나던 아이가 있었다. 띄엄띄엄 이긴 했으나 홀로 3년 동안이나 짝사랑했던 아이. 


1학년, 남녀 합반은 아니었으나 외부 학생 기자 활동을 하며 알게 되어 친구가 되었고, 울 엄만 그 아이를 처음 본 순간 눈이 참 맑고 예의도 바르다며 특급 칭찬을 쏟아내더니 잘해보라며 한 천 킬로쯤 멀리 나가 버리셨다. (가장 친한 친구 L은 이미 만 킬로는 더 멀리 나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전혀 관심이 없어  뭔 소릴 하나 싶었지만 얼마 지나 알 수 있었다. 


내가 스타트는 느리지만 한 번 빠지면 훅. 그리고 아주 오래간다는 것을. 






인기가 많았던 그 아이 때문에 시샘도 받았다. 훈훈한 외모에 학생 회장까지 했던 그 친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이상형에 가장 적합한 외모이기도 하다. 소 눈을 가진 범생이 스타일.

그 친구와 내가 인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고 나면 '무슨 이야길 나눴냐, 친한 사이냐' 물었던 친구도 있었고, 몇 번이나 고백을 했다 차인 경험이 있는 한 친구는 나에게 와서 걔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며 다음 고백에 대한 상담까지 한 적도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난 그 아이에게 무뚝뚝하게 인사를 하거나 혹은 그냥 인사도 안 하고 지나쳐버렸다. 

친구들이 날 부르는 '이쓸'이란 애칭에 심쿵한 적도 있지만 그때도 난 자존심이 강했고 그 아이를 좋아하는 다른 여자아이들과 같고 싶지 않아 더욱 냉정하게 대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호감을 숨기려다 역효과가 났는지 아는 언니(서로 다 아는 사이)와 셋이 만난 자리에서 그 아이가 잠시 자릴 비운 사이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00 이한테 자격지심 있니? 많이 싫어해?”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기도 많고 공부도 열심히 하던 친구였으니까. 

돌이켜보면 ‘그때 그렇게까지 혼자 텍텍거릴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누군가를 그리도 오래 좋아해 본 적이 없던 나에게 쓰디쓴 경험을 하게 만든 사람이기에 더욱 냉랭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의 크기가 가장 컸던 1학년, 그 아이가 어느 작고 귀여운 친구에게 고백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그 일은 1학년 온 반에 소문이 났고 내 마음을 나의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았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L양을 제외하곤 친한 친구 누구도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한 걸 몰랐다. 졸업 이후 알고 나서 모두 놀랄 정도였으니 나는 정말 감정을 잘 숨겼나 보다) 


2학년, 오랜만에 친구들과 시내에서 즐겁게 놀기로 했던 크리스마스이브. 나름 꾸미고 나가느라 약속 시간보다 늦게 버스정류장에 내린 나는 방금 전 그 아이가 누군가에게 줄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서 있었다는 이야길 듣게 되었다. 신나게 뒷담화를 하는 친구들 덕분에 하루 종일 우울한 크리스마스이브였다. 


3학년, 앞서 띄엄띄엄이라 말한 것처럼 좋아하는 마음이 늘 같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졸업식날,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던 강당에서 그 아인 아이들과 사진을 찍다 말고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늘 그렇듯 우리 엄마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하고 나에게 둘이 사진을 찍자 말했다. (덕분에 나는 주변의 수많은 여자아이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이제 그 사진은 싸이월드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둘이 찍은 사진이 하필이면 내 첫 화장 날이라는 것에 분노를 표한다. (참고로 그 당시 스모키 화장이 유행이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고 어느 늦은 밤. 버스에서 우연히 그 아이와 만났다며   L에게 연락이 왔다. 여자친구가 생겼고 곧 군대를 간다고 했다. 내 연락처를 알려준 덕분에 오랜만에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군대에 건강히 잘 다녀오란 인사를 끝으로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L은 줄곧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풋사랑일 뿐 첫사랑은 아니었을 거라고. 첫사랑은 더 멋지게 나타날 거라고. 그 이후  뜬금없이 그 아이 꿈을 꿀 때면 '그 아이에 대한 미련이 참 컸구나.' 싶었다.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전달해 보지도, 친한 친구로 지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꼭 한 번 우연이라도 마주치길 바랐다. 남들이 첫사랑 이야기를 할 때, 다시 보고 싶은 사람 이야기를 할 때 꾸준히 떠올리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정말 한 번은 마주치길 바랐다. 잘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 한 번쯤은 솔직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널 3년씩이나 좋아했었다고. 너는 그걸 알고 있었냐고




우연이라는 건 간절히 바랄 땐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을 때 갑자기 찾아와 사람을 놀라게 만든다.  그 아이도 그랬다. 


어느 날,  너무나도 갑자기 그 아이와 마주치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