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야 Dec 04. 2023

그 남자의 다정함에 대하여

1년 뒤의 깨달음

지인과 술을 마셨다. 늘 우리의 공연을 보러 와주는 언니(지인)가 대학로에서 공연을 한다기에 D양과 오랜만에 대학로를 찾은 길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결국 나온 건 연애이야기.

'곧 크리스마스인데 왜 혼자냐. 그동안 무슨 일은 없었냐'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언니는 내가 나의 동창과 잘 이어지길 바랐었기에 여전히 나의 sns 댓글을 확인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진전은 없는지 궁금해했다. D양은 언니에게 '속 답답하다, 망했다' 며 그간 있었던 나의 소개팅 이야기와 함께 몇 번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며 언니에게 나의 이야길 모두 일러바쳤다.


언닌 설마 그 남자 때문이냐 물었다. (1년 전 언니는 나의 짝사랑 이야길 듣고 극구 반대했었다) 그리곤 그렇게까지 해놓고 지금은 뭐가 변한 게 있냐 되물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D양에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잔소리를 하려다 멈추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 대단하다. 아직도 그렇게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게."


순수한 사랑이 뭔지 나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좋아야 한다는 것.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좋은 점들을 찾게 되고 그 마음이 오래간다는 것. 그것이 늘 문제가 되곤 하지만 쉽사리 고쳐지지가 않는다. 난 다른 사람의 마음보단 내 마음이 중요했다. 소중했다. 그게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물론 바보 같다는 몇 가지 지적엔 동의한다)



얼마 전 D양과 일 때문에 자주 가는 카페에 방문했다 몰랐던 이야길 듣게 되었다. 작년 나는 무작정 그 사람에게 공연의 마지막 대사를 부탁했었다. 원래 다른 이에 몫이었으나 극 흐름이 깨진다는 반응에 급히 그 사람에게 부탁을 했던 참이었다. 흔쾌히 들어주긴 했으나 바로 다음날 공연이라 애가 타는 나와는 달리 그 사람은 너무나도 태평해 보였다. 그래서 부탁을 한 입장이면서도 따라주지 않는 그 사람이 참 많이 얄미웠더랬다. 공연 당일날 대사를 맞춰보며 걱정은 더 커져갔다. 그래도 이게 최선이니 어쩔 수 없다. 그냥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공연이 끝난 뒤 그 사람 연기에 대한 반응이 너무나도 좋았다. 배역을 잘 바꿨다는 칭찬과 마지막 장면에 설레었다는 이야기. 나중에 그 장면을 다시 돌려본 나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그리고 대사와 대사 사이를 채운 그 사람의 연기를 보며 많이 놀랐었다. (내가 심쿵했던 그 사람의 피지컬과 스타일도 장면을 살리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1년이 지난 현재. 우연히 그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당시 그 사람이 대사 연습을 열심히 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얼마나 혹은 어떻게 열심히 한지는 알 수 없지만 역시나. 늘 그런 식이다. 별 일 아닌 일은 그렇게나 잘난 척 티를 내면서 정작 중요하게 챙겨줄 때는 티 내지 않는다. 그게 내가 발견한 그 사람의 다정함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 나는 그 남자의 다정함을 좋아했구나.'




'츤데레' 라 불리며 '너 T야?'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자기 사람들은 잘 챙기는 사람인 것 같다. 동네 지인들의 생일 때마다 직접 케이크를 사가지고 가 축하해 주는 걸 보며 참 신기하다 싶었다. 그냥 카톡으로 축하한다. 한마디 보낼 것 같은 사람이 자기 쉬는 날에도 일부러 찾아가 축하해 주는 걸 보며 '저 남잔 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단골손님이 직원이 되었을 때에도 생일날 갑자기 말도 없이 외출을 했다고 한다. (그 직원에게 직접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직원은 '사장님 또 놀러 갔구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케이크를 사들고 들어와 툭 하고 건네주었다고 한다.


나의 고백 이후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우리는 우습게도 내 생일날, 동네 술집에서 세 달 만에 마주쳤다.

D양과 소소하게 생일파티를 하고 있던 그날 퇴근 후 그 근처를 지나가던 그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다. 한 듯 마는 듯한 인사로 지나쳐가더니 '왜 술을 마시고 있냐'며 빵 하나를 사 와 테이블에 턱 하니 주고 떠났다. 그날도 지인의 생일파티에 간다며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드라마에 나올법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오다 주웠다'의 멘트를 던지고 떠났지만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내 생일인지 알 수도 있겠구나.'

(그날 빵 하나의 넘어가 다시 그 사람을 찾은 건 문제지만) 그런 소소한 다정함이 쌓여 나는 그리 오래도록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리워했나 보다.


손발이 차서 유독 겨울만 되면 추위를 잘 타는 나는 그 사람의 공간에선 그다지 추운 것을 몰랐었다. 추워서 옷을 챙겨 입을 때면 곧바로 히터를 조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던 음악도 금방 파악한 그 사람은 매장을 찾을 때면 자주 그 음악들을 틀어주곤 했다. 섬세했다. 단골손님에겐 그런 사소한 점까지 파악해서 맞춰주었다. 매장 주인으로서 손님을 챙기는 것이 혹은 그 사람의 그런 다정함이 나는 좋았나 보다.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선 다정함을 지능으로 본다 했던가. 상대를 안심시키는 반듯함 같은 거. 그런 건 하루 이틀에 쌓이는 게 아니라면서.


모르겠다. 분명 다정한 사람이 아닌데 다정하다. '다정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정이 많다. 또는 정분이 두텁다.' 라는데 그건 또 맞는 것 같다. 그 사람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자기 사람들에겐 정이 많은 사람 같으니까.


난 따뜻한 사람, 다정한 사람을 좋아한다 생각했는데 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전에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적어봤을 때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나 이제와 문득 깨달은 것은 난 그 사람을 겪으며 느꼈던 그 남자의 다정함을 좋아했던 거구나. (물론 외적인 섹시함이나 귀여움에 대해선 제외하고)


요즘 들어 글로 무언가를 남기고 싶지 않았지만 일주일 내내 일 때문에 글만 쓰다 쉽게 쓰인 이 글도 남기기로 했다. 얼마 전 수업을 하다 한참 썸 타는 이야기, 짝사랑 이야기, 연애하는 이야기에 빠져있는 중딩들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질투한 적 없냐고. 마음 아픈 적 없냐고.' 그냥 대답 없이 웃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별 거 아닌 일에 참 많이 속상하곤 했었다고. 나한테 예쁜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도 예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속으로 애달펐다고. 그 모든 게 나에게 많지 않았던 그 사람 다정함 때문이라고. 그 이야긴 해주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사랑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면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