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
집으로 돌아와 그녀와 한참 카톡을 주고받았다.
매번 자신에게 연애 상담을 하던 친구에게 조언을 해주다가 '내가 너무 과하게 조언한 건 아닌가?' 싶었던 모양이다. 비슷한 연애를 했던 친구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 끝을 알 것 같기에 조언을 했을 뿐인데 상대에게 무례했을까 싶어 이야기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땐땐한 기운에 마음이 답답하고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한때 나의 전문 조언자였던 그녀는 어느 순간 나에게도 그런 말을 했었다.
'자신의 말이 틀린 걸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 주제넘은 것 같아 점점 더 조심스럽다고.'
그냥 하소연이 할 곳이 필요했던 혹은 감정에 충만했던 나에게 객관적이고 남자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는 그녀의 조언은 늘 언제나 위로가 되곤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이후 그녀가 부담스러울까 내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마 짠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친구에게 말해줬을 것이다. 나 역시도 아는 이야기라 처음엔 "어차피 듣지도 않을 건데 뭐 하러 상담해 주냐?"라며 타박했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내 친구인 그녀가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정이 많은 너에게 그 친구가 소중한 친구가 되어서 그랬던 거구나.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화가 났던 거구나.
왜 그렇게 말해준 건지 그 이유를 구구절절 말해줄 수 없었을 텐데 혹여 대화 중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더욱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이제야 그녀가 왜 그렇게 답답해하고 조심스러웠는지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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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찾아오는 길냥이를 챙기다 못해 기다리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곤 한다.
특히 여행을 가거나 바쁠 때 나에게 대신 챙기라 임무를 주시면 투덜거리며 캔을 챙겨준다.
몇 년 전 비 오던 어느 날,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에 차 밑을 바라보니 비에 흠뻑 젖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냥이들이 박스에 버려져 있었다. 어느 집 옥상에서 엄마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키우고 있었는데 그 집주인이 시끄럽다며 박스에 넣어 길가에 버려둔 것이었다. 이미 몇 시간 전부터 비 맞으며 울고 있었다는 새끼 냥이들을 보며 엄마는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엄마 냥이가 데려가지 않는다 말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근처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박스만 옮겨놓고 돌아왔다.
나는 엄마에게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말했지만, 사실 누군가 알아서 구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다 얼마 못 가 우리는 다시 그 장소로 갔고 여전히 울고 있는 새끼 냥이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급히 구해온 분유를 먹이고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4-5시간에 한 번씩 분유를 먹어야 한다길래 엄마랑 아침 일찍 교대하기로 하고 밤새 내 방에서 돌보기 시작했다. 아침이 밝아오고 다음 분유 먹일 시간에 맞춰 잠시 잠들었다가 한 시간도 안 되어 깨어났다.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일까?
새끼 냥이들은 모두 몸이 차가워진 채로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렸다. 내가 너무 담요로 감싸놓은 건 아닌지, 분유를 너무 많이 먹인 건 아닌지, 아닌 걸 알면서도 그냥 내 탓 같았다.
이사 온 뒤 눈 한쪽이 없는 검은 암컷 고양이 예쁜이 (엄마가 지은 이름이다)에게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져 버렸다. 엄마는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집 마당에 캔과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나는 아주 가끔씩 아이들을 챙겨준다. "귀찮아"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정주면 마음 아플까 그게 두려워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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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언제지?' 하며 sns에 올린 하이라이트 사진을 막 넘기다 그 사진 속 일들과 생각과 감정들이 떠오른다. 23년엔 온통 한 가지에 대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 정도였음 그냥 대놓고 말한 게 나았다.
그녀도 전에 '그럴 시간에 가서 말을 해!'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그 이후 사진들도 마찬가지긴 하나 그때 나는 정말 많이 실망하고 미워했었다. 그래서 더 많이 마음을 숨겨야만 했다.
어릴 적엔 지금보다 더 사람에 대한 방어가 심했던 것 같다. 정이 많던 꼬마는 자라나며 주변 사람들의 배신과 실체를 경험했고 쉽게 마음을 주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본성은 어쩔 수 없는 탓인지 그 경계를 풀고 마음을 준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정을 주어버리고 만다. 어떠한 관계 속에서도 의리를 중요하게 여겨, 의리
없는 사람은 언제든 그럴 것이라 여기고 관계에서 배척해 버린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 간의 관계 속에서 진짜 이유를 발견하고야 만다. '의리 없는 인간은 싫어.'라고 말하고 상관없는 척했지만 자꾸만 걸리던 마음이 신경 쓰였다.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될 감정들을 기어코 끄집어내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마 또 정을 주어서 일 것이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넘길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겁 많은 꼬맹이가 내 안에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나 보다. 얼마 전부터 화제가 된 김혜자, 이효리 두 분의 대화가 그 이유를 말해주는 것처럼 "많이 사랑하며 금방 실망해서 미워해"라는 말이 마음에 와 콕. 박힌다. 그렇다고 저분들이 말하는 '적당히 하면 되는데'라는 것이 나에게 가능하기나 할까?
아니. 나는 가족이든 사랑이든 친구이든 동물이든 너무 많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처받지 않고, 실망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기 위해 애써 사랑을 피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널 사랑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사랑하고, 상처를 입어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 또다시 사랑을 건넬 수 있는 사람.
정 많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숨기지도 않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쉽지 않을 걸 알기에 내가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일들과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 올해가 가기 전엔 겁쟁이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