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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라면

내 모든 순간을 채운 너에게

by 야엘

육아를 하다보면 시간이 참 묘하게 흐른다. 하루는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리는데, 그 안의 10분, 1시간은 지독히도 느리다. 30분쯤 지났겠지 하고 시계를 보면 고작 5분이 지나가있는 걸 보고 종종 놀란다. 이렇게 시간이 멈춘 듯 흘러가지 않을 때, 나는 남편에게 ’아기가 다음 낮잠에 들 때까지는 버티는 시간‘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버틴다’는 말이 마음에 걸린단다. 마치 아기가 견뎌내야 할 대상이 된 것 같다고.


그렇게 오늘도 버팀으로 채워지는 하루를 보내던 중, 한 글을 만났다.


글쓴이는 남편의 도움 없이 200일 된 아기를 홀로 키우는 중이었지만, 아기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기가 50일 즈음 되었을 때 읽었던 글 때문이었다. 그 글에 따르면, 지금의 순간이 사실은 90세가 된 내가 눈을 감고 병상에서 마지막 소원을 빌어 이맘때의 내 아기, 그리고 나로 돌아와 얻게 된 선물 같은 시간이라는 것. 그 글을 접한 후로는 매일을 그런 마음으로 살게 되었다고.


죽음을 앞둔 순간에 단 하루가 오늘이라면, 나는 오늘을 지금처럼 살고 있을까?




ChatGPT와 딥시크 등 AI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요즘, 문득 영화 'A.I.'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인공지능 로봇소년 데이빗이 엄마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다 영겁의 시간이 흐르고, 인류가 사라진 지구에 찾아온 외계 존재들이 데이빗을 발견한다. 그들은 데이빗의 기억을 읽고, 그가 소중히 간직했던 엄마의 머리카락 한 줌으로 엄마를 하루 동안만 되살려준다. 그렇게 다시 만난 엄마와 데이빗은 평범하지만 완벽한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커피를 마시며, 숨바꼭질을 하고, 그림을 그리다가 함께 잠이 드는 그런 소박하지만 꿈 같은 하루.


스틸컷만 봐도 눈물이 고이는 이 영화는 나의 눈물버튼이다...


나는 상상해본다.

어쩌면 이미 나는 세상을 떠났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게 되어 나를 그리워하던 우리 아이가 오늘이라는 날로 시간을 거슬러 온 것은 아닐까 하고. 내가 너의 모든 순간이고, 네가 나의 모든 순간인 지금. 이처럼 빈틈없이 서로에게 녹아든 시간이 앞으로 또 있을까? 나는 너에게 엄마가 되었다가, 선생님도 되었다가, 너만을 위한 연예인도 되고, 그런 너를 따라 나의 하루도 흘러가는 이 시간들에 '버틴다'는 표현은 너무나 아쉽다. 세수도 하지 않아 꼬질꼬질한 얼굴로 볼을 비벼도 환하게 웃어주는 너. 그런 너에게 그리워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행복한 하루하루를 선물해야지.


연인을 위해 쓰여진 가사였겠지만, 아이에게 대입해봐도 가슴에 울림을 주는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의 가사를 마음속으로 읖조려본다. 그리고 나의 모든 순간을 채워줄 너와 함께 사랑이 가득할 내일을 그려본다. 때로 지치고 버겁더라도, 언젠가 그리움이 될 이 시간들이 지금은 여기, 우리 앞에 있으니까.​​​​​​​​​​​​​​​​



너의 모든 순간 - 성시경


이윽고 내가 한눈에 너를 알아봤을 땐

모든 건 분명 달라지고 있었어

내 세상은 널 알기 전과 후로 나뉘어


니가 숨 쉬면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니가 웃으면 눈부신 햇살이 비춰


거기 있어줘서 그게 너라서

가끔 내 어깨에 가만히 기대주어서

나는 있잖아 정말 빈틈없이 행복해

너를 따라서 시간은 흐르고 멈춰


물끄러미 너를 들여다 보곤 해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너의 모든 순간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차올라 나는 온통 너로


보고 있으면 왠지 꿈처럼 아득한 것

몇 광년 동안 날 향해 날아온 별빛 또 지금의 너


거기 있어줘서 그게 너라서

가끔 나에게 조용하게 안겨주어서

나는 있잖아 정말 남김없이 고마워

너를 따라서 시간은 흐르고 멈춰


물끄러미 너를 들여다보곤 해

너를 보는 게 나에게는 사랑이니까

너의 모든 순간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차올라 나는 온통 너로


니 모든 순간 나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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