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과 ‘우리의 시간’에 대해서
‘젊은 날에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잃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갖고 있고 넘칠 때엔 모르다가 부족하거나 잃게 되면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들. 노래 가사처럼 젊음과 사랑이 그러하고, 건강도 그러한데, 육아를 시작한 후 나에게 아쉬운 또 한 가지는 이것이다.
시간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것은, 내가 나의 의지대로 계획하여 사용할 수 있는 ‘내 시간‘이겠다. 다행히 아기가 순한 덕분에 비슷한 월령의 엄마들에 비해서 넘치게 많은 자유시간을 얻고 있지만, 아기를 낳기 전의 전생과 같은 시절과 비교해서는 내 시간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내 의지에 따라 유용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동시에, 하고 싶은 일들은 더 많아졌다. 책도 읽고 싶고, 투자 공부도 하고 싶고, 브런치 글도 쓰기 시작했고, 회사에 다시 돌아가기 전 내 사업 아이디어 중 한 두 개는 실행시켜 보고도 싶다. 막상 내 시간이라는 것이 차고 넘치던 시절에는 시간을 허비했으면서, 옆에 있을 땐 당연시하다가 떠난다 하니 바짓가랑이를 붙잡게 되는 참 간사한 마음이다.
어렸을 적 즐겨하던 추억의 게임 중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이 있다. 여러 시리즈가 있지만 가장 히트였던 건 단연 프린세스 메이커 2. 아직도 게임 화면을 보니 동생과 나란히 앉아 엄마가 집에 오시기 전 결말을 보기 위해 달리던 그때가 생각난다.
프린세스 메이커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테지만, 마치 매니저가 된 것처럼 딸의 한 달 스케줄을 채워나가며 게임이 진행된다. 주어진 시간 동안 딸에게 알바를 시켜 돈을 벌게 할 수도 있고, 학원에 보내 무언갈 배우게 할 수도, 무사수행을 떠나게 할 수도, 그냥 휴식을 하게 할 수도 있다. 한 주 한 주의 스케줄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목표로 하는 엔딩을 두고 한 주, 한 달 정도의 스케줄을 잘못 짜서 허비한다고 해서 결말의 대세가 달라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한 주와 한 달이 모여 엔딩이 결정된다. 게임에서 주어진 시간은 8년으로 언제나 똑같지만, 같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웠는지가 결국 어떠한 사람으로 성장하느냐로 귀결된다.
비록 새해가 된다고 한 살을 더 먹는 시절은 아니게 되었지만, 새해가 되며 문득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어 본다. 내 인생을 이루는 한 달, 하루, 일분과 일초를 나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작은 물방울이 바다를 이루는 것처럼, 그 일분, 일초의 시간이 내 인생을 이루는 퍼즐인지도 모르고 무작위로 손에 집히는 퍼즐을 별 고찰 없이 인생이란 퍼즐판 위에 올려두진 않았나 반성해 본다.
아이를 옆에 눕혀두고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이제 내 시간만으로 하루를 채우는 싱글이 아닌 ‘아기와 나’, 우리의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고 싶어 하는 엄마다. 내 시간이 사라진 만큼 생겨난 우리의 시간 또한 유한하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기가 기특도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오지 않는다는 아쉬움에 사진으로, 영상으로 지금의 시간과 아기의 모습을 담아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르고, 흐르는 시간의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시간을 소중히 보내는 것뿐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두 가지의 언어로 표현했다고 한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갈 뿐인 물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각 개인들이 경험하는 주관적인 시간의 개념이다. 같은 한 시간일지라도 일생을 바꾸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경험을 한다면 이를 가리켜 카이로스라고 한다. 다가오는 2025년은 나에게 크로노스일까? 아니면 그 안에서 카이로스의 순간들을 만나게 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카이로스가 시작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내 시간’과 ‘우리의 시간’을 모두 사랑하고 아껴보자.
Make each day cou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