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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Jan 24. 2019

도망치고 싶었던 목포

목포를 아시나요?

짐을 넣은 라면박스와 가방 하나를 등에 메고 아빠 앞에 섰다. 아빠는 3초간 말없이 안경 너머 치켜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시더니 이내 소리를 지르셨다. 그 짐을 들고 문 밖을 나서면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는 그 시절 유행어로 엄포를 놓으셨다. 대학도 졸업하기 전, 나는 그토록 목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주머니에는 알바로 번 30만 원이 고작이었음에도 목포에서 도망치고 나면 살 것만 같았다. 나는 목포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마쳤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목포라는 곳은 지키고 가꾸어야 할 고향이라기보다 떠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족쇄 같았다. 고향 사투리를 쓰는 것조차 싫었다. 왜 그렇게 목포가 싫었을까?


유달산 노적봉 앞에 있는 목포 유적지 안내판


미디어 속 전라도 사투리는 범죄자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면서 목포의 발전을 기대했다가 부질없는 짓임을 알게 되면서 탈목포는 나의 최우선 과제였다. 2019년 1월은 그 어떤 때보다 목포가 핫하다. 올해 내 나이 마흔인데 전국적인 이런 관심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도 없었던 관심이었다. 나는 25년의 목포 살이 중에 지금 화두로 떠오르는 만호동(동 이름이 영해동, 행복동, 만호동으로 바뀌긴 했지만)에만 20년을 살았고 우리 부모님은 지금도 그 집에 그대로 살고 계신다. 나 역시 매년 3번 이상 여전히 고향집을 찾고 있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목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근대문화가 집 근처에 널려있고, 그 속에서 보낸 나의 유년시절은 달콤하고 행복했음에도 그것은 현실적인 행복이나 안식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적 문화유산이 된 곳들은 나의 유년을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곳들이다. 내 친구 집이 적산가옥이었고, 내가 자주 가던 목욕탕과 수선집이 일본식 가옥이었으며 유달산의 이난영 노래비가 그랬고, 내가 다녔던 경동 성당이 그러했다. 가끔 혼자서 그 동네를 돌아보곤 한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이 지겨웠던 그 동네가 가끔은 새롭고 신선해 보였지만, 내가 다시 돌아와 살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전히 산다는 것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손혜원 의원 이야기를 목포에서 들었던 건 2017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명절에 고향집을 찾았는데 손혜원 의원이 우리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고 있다면서 여기 뭐 먹을 게 있다고 여기 오는지 모르겠다는 야박한 투정을 들었다. 손 의원의 히스토리를 모르신 목포 어르신들은 그게 잠시 잠깐의 호기심이라고 생각하셨다. 한 번도 목포를 떠나지 않고 그 동네를 지키며 살아오신 어르신들에게는 여의도나 청와대 사람 그 누구도 자신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거나 나아지게 할 수 없음을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손혜원 의원이 그 동네 집들을 하나 둘 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동네 어르신들의 우려를 들었던 기억도 난다. 한두 번 오는 것이야 할 일 없는 국회의원의 심심풀이로 넘기려 했는데, 지속적으로 오는 것은 물론이고 집까지 사서 리모델링을 한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도시재생인가 뭔가를 하다 보니 저러나 보다면서 어른들의 의심은 확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만호동 주민자치위의 성명 발표에서도 그렇듯이 손혜원의 진심은 확산되고 있으며, 목포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퍼져가는 분위기다.




목포시민들 특히 구도심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피해의식이 강했다. 나 역시 그랬다. 목포라는 고향이 싫어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다 부모와의 다툼과 반항으로 귀결된 가출을 강행했듯이. 우리 친구들은 목포에 남은 친구들과 목포를 떠난 친구들 사이의 알 수 없는 괴리도 존재한다. 거기에 대통령을 만들어내면 살기 좋은 곳이 될 거라는 희망조차도 산산이 부서질 때 목포는 한없이 무너져왔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목포는 힘들었고 우리 집도 희망을 버렸던 때로 기억된다. 최고령 공인중개사를 합격하시고 야심 차게 목포 인근 영암, 무안 등지에서 부동산중개업을 꿈꾸셨던 아빠, 야속하게도 노무현 정부는 그 지역 곳곳을 그린벨트로 묶었고 우리는 다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끊임없이 나와 상대를 비교하고 분석하며 나의 위치를 체감하는 과정이 되기 일쑤다. 손혜원 의원이 진심을 다해 목포에 애정을 가지고 그늘진 우리 동네에 희망을 불어보겠노라고 나서고 있으나 누군가는 끊임없이 손혜원의 재력과 자신을 비교하며 손혜원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현실을 받아들인다. 나는 늘 돈은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멋진 명품과 하인을 두고 나의 위치를 공중에 띄우기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야에 투자하고 그 분야의 오랜 장인들을 지원하는 일이야 말고 가치 있게 돈지랄을 해보는 게 아닐까라고.




고향집 안방에서는 문을 여닫을 때마다 옻칠 냄새가 진동하는 자개장이 있다. 그 집에 이사 오면서 비싸게 주고 사신 건데 여전히 아름답고 튼튼하다. 엄마는 언제든 저걸 버리고 세련된 스타일의 모던한 장롱을 사고 싶어 하신다. 누군가에게 골칫거리지만 그것이 누군가는 애타가 지켜내고 싶은 역사고 문화임을 우리 모두 곡해하지 말자. 손혜원 의원이 돈을 얼마나 들여 건물을 사들였다는 것보다, 건물을 매입해서 지금 해내고 있는 일들을 눈여겨보자. 내가 하지 못했다고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들였다고 그것이 투기라는 이름으로 쉽게 단정하기엔 손혜원 의원이 목포의 그늘진 골목에서 이득 본 게 없다. 한 번쯤 그 골목을 돌아보면 투기라는 말보다는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이쯤에서 전 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재를 사들인 간송이 생각난다면, 그거 오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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