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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Jan 24. 2019

초보운전

제주에서 나를 만나다 中

제주는 배낭 하나 메고 도보여행하기 좋다. 짐이 많더라도 다음 숙소로 짐을 옮겨주는 짐옮김이 서비스가 흔해 차가 없어도 여행에 불편이 없다. 처음에는 배낭 하나 메고 쉼 없이 걷는 여행을 계획했었다. 잠자고 있던 운전면허증을 꺼내 보다 '제주라면 나도 운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들었다. 그렇게 나는 직접 운전을 해서 제주 한 바퀴를 돌아볼 무모한 작전을 세웠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비밀에 부치고 결행에 나섰다. 면허는 땄지만 제대로 된 운전 한번 한 적이 없었기에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최우선 과제는 사고 나지 않고 안전하게 여행을 마치는 것, 야간운전은 절대 하지 않고 해지기 전에 숙소 인근에 잘 세워 두는 거였다.


서른을 한참 넘겨 미루고 미루던 운전면허를 따고서도 집 앞 골목길 3중 주차가 무서워 운전을 미뤄왔었다. 뭐든 겁 없이 덤비던 나였는데, 운전은 왜 이렇게 무섭던지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못하면 평생 못할까 싶어, 제주행 비행기표를 예매하면서 렌터카를 함께 예약했다. 그날 예약을 미루면 영영 못하게 될 것 같기도 했다. 제주여행을 갈 때마다 렌터카를 빌려봤고(물론 남편이 운전했지만) 렌트하는 과정 역시 어렵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내심 자신 있었다. 그런데 실제 혼자서 렌트를 해보니 모든 게 낯설고 어설펐다. 그래도 아무도 모르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보려고 노력했다.

가장 먼저, 공항에 내려 알려준 대로 5번 게이트로 향했고 내가 예약한 렌터카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역시 제주답게 주차장 구역을 알리는 튼튼한 표지판은 바람에 옆으로 누워있었다. 사실 그때부터 떨리고 긴장되기 시작했다. 내가 예약한 렌터카 업체는 소위 무인 렌트 시스템이었다. 은행 창구처럼 예약 내역을 확인하고 보험을 가입하고서는 차 번호와 주차구역이 적힌 쪽지 하나를 주면 알아서 찾아가는 방식이다. 쪽지를 받아 들고 수십 대의 렌터카만 즐비한, 마치 이름 모를 사막처럼 느껴지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막상 그곳에 들어서니 무서움이 엄습해왔다.

내가 6일간 타게 될 차는 어렵지 않게 찾았지만 망망대해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그 차를 빼기 위해서는 후진으로 2대의 차를 지나야 했고 지나자마자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 차를 회전시킨 후 다시 직진과 좌회전으로 골목을 빠져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초보운전자에게는 상당히 복잡한 작업이었다. 대충 이 정도였다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켠 후 사이드미러, 룸미러의 각도를 조절한다. 안전벨트를 매고 도착할 목적지를 찾아 검색한 후 '바로 안내'를 누른다. 심호흡을 하고 사이드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R에 놓는다. 턱을 넘을 수 있게 살짝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주면서 뒤에 오는 차량을 확인하고 천천히 후진을 한다. 언제든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도록 오른발을 브레이크 위에 올려놓는다. 목표한 두 대의 차량을 벗어나려 할 때 브레이크를 다시 밟고, 핸들을 왼쪽으로 충분히 돌린 후 브레이크에 발을 떼고 차를 그대로 회전시킨다. 차가 직진하고자 방향에 바로 섰다면 다시 기어는 D에 놓고 핸들을 똑바로 원위치 시키고 브레이크에 발을 떼고 서서히 그 곳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달달달 거리며 렌터카 업체를 겨우 빠져나갔는데 나가자마자 마주한 좁은 골목길에 덩치 큰 화물차가 내 시야를 가렸고, 할 수 없이 중앙선을 넘어 재촉하는 뒷차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내 맞은편에서 택시가 나의 머뭇거림을 가차없이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돌진해왔고, 난 결국 다시 후진을 하며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성격 급하신 뒷차까지 모두 보내고 한가해지기를 기다려 겨우 그 골목을 빠져 나왔다.

골목을 빠져 나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고, 복잡한 제주시를 빠져 나오기까지 여러 번의 신호와 좌회전, 우회전, 차선변경을 해내야 했다. 그래도 어쨌든 내 삶의 운전 1막을 열었다.

겁먹은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잘 해냈다. 나쁘지 않았다. 5박 6일동안 안전한 운전을 위해 미리 봐둔 '네이버의 초보운전 잘하는 법' 덕분이라 해 두겠다. 텍스트로 된 운전법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운전을 상상했던 게 주요했다. 그럼에도 제주여행을 마친 후 운전은 좀 편해졌냐고 묻는다면, 예전처럼 여전히 운전은 남의 일 같다. 제주에서는 단꿈을 꾼 듯, 지금은 현실로 돌아와 버렸다. 스파크, 그걸 사야 하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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