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해링 티셔츠를 입고, 앤디 워홀 이불에서 잠을 자고, 로버트 메이플소프 접시에 음식을 담는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떠난 예술계의 거장들과 이런 방식으로 소통하는 데 꽤 익숙해져 있다. 키스 해링, 앤디 워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1987년에서 1990년 사이 짧은 시간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들의 재단은 ‘예술가의 유산을 관리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키스 해링은 1986년 팝 숍(Pop Shop)을 열어 예술의 대중화를 직접 실험했다. 그의 사후, 해링 재단은 직접 생산을 중단하고 라이선싱 모델로 전환했고, 여기서 발생한 막대한 로열티는 에이즈 연구와 교육 지원 등 자선 활동의 핵심 재원이 되었다.
앤디 워홀은 생전부터 상업주의를 노골적으로 탐구했던 작가였다. 사후에도 워홀 재단은 침구, 의류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워홀’이라는 이름을 하나의 영구적인 브랜드로 관리해왔다.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HIV 진단 이후 식기 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자신의 흑백 꽃 사진을 담은 디너 접시 제작을 시작했다. 퀴어 사진으로 잘 알려진 그가 대중적인 꽃 이미지를 선택한 것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예술을 세상에 남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오늘날 이 접시들은 박물관 기념품 숍부터 명품 매장까지 다양한 유통망을 통해 소비되고 있다.
이 거장들의 재단은 공통적으로 ‘그가 살아 있었다면 무엇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기준 삼아,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라이선싱을 관리한다. 사진이나 판화처럼 본래 복제가 가능한 매체를 다뤘던 이 작가들은, 저작권과 상표권이라는 자본주의적 기술을 통해 작품의 ‘아우라’를 대중 상품으로 확장했다. 그리고 이 라이선싱 수익은 재단의 기금을 키워 현대미술 전시와 출판을 후원하는 강력한 자선적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워홀 재단이 라이선싱으로 매년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한편, 같은 시기 워홀의 <Flowers> 회화 한 점이 경매에서 680만 달러(약 90억 원)에 거래되는 현실은, 예술이 대중적 민주화와 극단적 사치라는 두 영역을 동시에 붙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에이즈는 그들의 삶을 단축시켰지만, 이제 그들의 예술은 패션 속에서 살아간다. 예술과 브랜드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지금, 이 확장은 예술의 생존일까, 아니면 상품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