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화려하고 럭셔리한 모습이지만, 두바이에도 ‘마당 놀이’ 같은 동네 잔치 분위기의 행사들이 종종 있다. 그중 하나가 매년 초, 두바이의 겨울 - 한국의 가을쯤 되는 선선한 날씨 속에서, 선셋 시간에 열리는 '시카 아트 & 디자인 페스티벌(Sikka Art & Design Festival)' 이다. 벌써 14회를 맞았다.
이름부터 아랍어로 ‘골목’을 의미하는 시카(Sikka). 그러니까 ‘골목 미술제’라고 불러도 될까. 실제로 이 행사는 2011년, 두바이 역사 지구인 알 파히디 지구(Al Fahidi Historical Neighbourhood)의 작은 골목과 마당에서 시작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화이트 월이 아니라, 벽과 안뜰, 집의 파사드, 비어 있는 공간 곳곳에 작품이 흩어져 있었다. 작품을 ‘보러 간다’기보다, 걷다가 마주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로컬 에미라티 작가들, UAE 거주 작가들, GCC 지역의 신진 작가들이 같은 문화권 안에서 새롭고 실험적인 작업과 퍼포먼스, 메시지를 자유롭게 선보이는 자리. 그렇게 시카는 하나의 ‘로컬 창작 생태계’를 만들어왔다.
이번 시카 아트 & 디자인 페스티벌은 ‘두바이를 상상하다: 미래의 정체성(Imagining Dubai: Identities of the Future)’이라는 주제로, 450명 이상의 크리에이티브와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페어는 오후 4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마지막 날 부랴부랴 다녀온 시카는 역시 매력적이었다. 선셋 직전, 두바이 전통 가옥 사이의 골목에 놓인 현대미술 작품들 위로 하루의 마지막 햇빛이 스며드는 풍경은 정말 신비로울 정도.
이번 페스티벌은 시각예술, 디자인, 기술, 도자기, 사진, 도시 예술 등 각 분야별로 큐레이팅된 전용 공간들로 구성되었다. 두바이 공공미술 전략의 일환으로 새로운 벽화들도 곳곳에 공개되었고, 성인과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워크숍과 예술계 트렌드를 논의하는 패널 토론도 진행되었다. 라이브 음악 공연과 오케스트라, 합창 무대도 이어졌다.
이번 시카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변화는 일본관이었다. 기존에는 없던 인터내셔널 특별관 형식으로, 특정 국가의 작업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공간이 새롭게 마련되었고, 올해 그 첫 국가가 일본이었다. <불완전함에 대한 숭배(The Worship of the Imperfect)> 라는 전시 제목 아래, 일본 전통 미학인 와비사비(Wabi-Sabi)를 잇는 ‘불완전함’과 ‘덧없음’을 다루는 작업들이 소개되었다.
현재 시카가 열리는 장소인 알 신다가 지구(Al Shindagha Historic Neighbourhood)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오래된 지역이다. 완벽하게 매끈한 고층 빌딩이 가득한 두바이의 현대 도심과는 대조적인 공간. 그렇게 불완전한 옛 장소에서, 불완전함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전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전통 공예의 정신과 현대 기술이 결합된 정교한 미학, 두바이 전통 가옥과 묘하게 어울리는 일본 전통 가옥의 이미지, 그리고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예술가들의 작업과 그 안에 담긴 철학까지. 조용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 하나 눈에 띈 점은 혼합 매체(Mixed Media) 작업의 비중이었다. 전시 주제인 ‘미래의 정체성’을 다루기 위해, 작가들은 단일 매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 -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인 상태 - 을 표현하고자 디지털, 섬유, 소리, 오브제를 혼합하는 방식을 택한 듯 보였다. 경계를 허무는 작업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일반적인 판매 중심의 아트페어가 아니라, 플랫폼 형태의 아트 페스티벌인 시카는 두바이가 단순한 금융도시나 관광도시를 넘어, 문화적 뿌리를 지닌 도시임을 알리려는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이 행사가 초기의 시장 논리 이전에 존재하던 실험적 프레임을 유지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