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의 무기화

by 정물루

고고학 역시 정치적일 수 있다. 단순히 과거 우리 조상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학문이 아니라, 현재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누군가는 유적을 복원한다는 이유로 땅을 차지하고, 누군가는 같은 땅에서 하루 아침에 접근권을 잃고 만다.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 북부에 위치한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마을 세바스티아(Sebastia)를 '유산 보호'라는 명분 아래, 이스라엘이 몰수 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스라엘은 성서적 기록과 기원전 9~8세기에 사마리아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다는 점을 근거로 해당 지역을 이스라엘 영토로 재지정하려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마리아는 고대의 국가가 아니라, 오늘날 요르단강 서안지구 북부에 해당하는 역사적 지역명이다. 현재의 팔레스타인 도시 나블루스와 세바스티아 일대를 포함하는 이 지역은, 기원전에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지만 이후 여러 제국과 공동체가 겹겹이 살아온 공간이기도 하다.


세바스티아는 바로 그 다층적 역사가 한 장소에 응축된 곳이다. 한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재건되기 전에는 십자군 성당이었고, 그보다 앞서 비잔틴 교회였으며 현재는 세례자 요한의 무던이 안치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팔레스타인의 세바스티아 주민 약 3,500명이, 오늘날 이 유적지를 통한 관광수입과 인근 올리브 농장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계획에 따라 분리 장벽이 설치될 경우,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오랫동안 가꿔온 올리브 농장쪽으로의 통행과 접근이 제한된다. 세바스티아 점령 계획은 이스라엘 극우 성향의 문화유산부 장관 등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주도 되고 있다.


고고학 유적을 모든 공동체와 신앙, 민족이 공유해야 할 공공 자산으로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스라엘 NGO 역시 "고고학이 무기화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외교부는 유네스코의 도움을 요청하며, 이스라엘이 역사를 왜곡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바스티아는 단순히 아름다운 유적지가 아니다. 구글맵의 포토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이곳은 오랜 역사와 기억 긴 시간동안 고이 쌓여온 장소다. 돈과 권력으로 아무거나, 뭐든지 해도 되는 것이란 말인가?


tempImageApD91R.heic 구글 지도 사진 - 세바스티아





https://www.artnews.com/art-news/news/sebastia-west-bank-archaeological-site-israel-palestinians-123477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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