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와 두바이가 명절을 보내는 방식
지금 두바이는 최대 명절인 라마단 기간이다. 한 달 동안 금욕을 하며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금식을 하고 기도를 드리며, 해가 지면 금식을 끝내는 식사인 이프타르(Iftar)로 가족과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 라마단의 끝을 기념하는 '이드 알 피트르(Eid al-Fitr)' 라는 축제가 이어진다.
어끄제 싱가포르에서 돌아오니, 두바이는 이미 라마단 분위기로 가득했다. 곳곳에서는 라마단 세일이 한창이고, 음식 나눔 행사도 이어지고 있었다. 국교가 이슬람인 UAE에서는 라마단 기간 동안 학교와 회사 모두 단축 운영을 한다. 점심시간 대신 근무 시간을 줄이고, 보통 회사는 오후 2-3시면 퇴근한다. 학교 역시 1시 반쯤이면 모두 하교한다. 도시 전체가 해가 지는 시간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지난 2주간 머물렀던 싱가포르는 또 다른 최대 명절, Chinese New Year - 한국의 구정 기간이었다. 사실 두바이로 이주하기 전까지는 아시아 대부분 국가가 음력설을 쇤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알고 보니 내가 살았던 나라들이 그랬던 것이다. 한국,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 음력설을 공식적으로 크게 기념하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국,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정도. 그러고 보니 내가 지나온 도시들 안에서만 보편이었을 뿐이었다.
추석을 쇠지 않는 싱가포르에서는 음력설이 가장 큰 명절이다. 설 전날 가족들이 모여 함께하는 Reunion Dinner(유니온 디너)로 시작해, 설 당일에는 친척 집을 돌며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함께 먹고 오렌지를 교환한다. 결혼하지 않은 아이들과 젊은 가족들에게는 빨간 봉투, 앙바오(ang bao)를 건넨다. 그리고 둘째 날, 셋째 날까지 가족 모임은 계속된다.
여러 문화가 섞여 이루어진 나라라 그런지, 종교는 달라도 설 분위기는 도시 전체를 감싼다. 성당에서도 ‘라이언 댄스(Lion Dance)’를 한다. 토속 문화가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신부님 의복을 포함해 장식도 대부분 빨간색이었다. 자원봉사자와 성가대 역시 빨간색으로 맞춰 입었다. 마치 크리스마스처럼 들뜬 분위기였다. 미사가 끝나자 행운과 부를 상징하는 오렌지와 빨간 봉투를 참석자 모두에게 나눠주었고, 성당 마당에서는 사자춤이 시작되었다.
Lion Dance(사자춤)는 중국에서 시작된 전통이지만, 중국계 비율이 약 70%에 이르는 싱가포르에서는 설 기간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사자 탈 안에 들어가 북과 징, 꽹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사자는 악귀를 쫓고 행운을 불러오는 존재라고 한다. 이번에는 성당뿐 아니라 음식점, 심지어 백화점 안의 까르띠에 매장 앞에서도 사자춤을 보았다. 나는 외국인이라 신기해서 쳐다본다고 생각했는데, 싱가포르 사람들 역시 사자춤을 구경하며 즐거워했다. 역시 Good Luck은 모두의 소망인 걸까.
그리고 싱가포르 문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Lo Hei(捞起, Yusheng)라는 음식이다. 다 함께 젓가락으로 샐러드를 높이 들어 올리며 소원을 외치는 의식 같은 시간. 더 높이 올릴수록 복이 더 많이 온다고 믿는다. 이 로헤이는 중국 본토 전통이 아니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발전한 문화라고 한다. 그래서 더 이 지역다운 풍경이다. 이번에 싱가포르에 머무는 2주 동안 거의 매일 로헤이를 한 듯하다. 우리가 도착해서, 어머님 쪽 가족 저녁이라서, 아버님 쪽 가족 모임이라서, 구정 전날이라서, 구정이라서, 구정 다음 날이라서... 등등의 이유로.
두바이에서는 우리의 음력설이나 추석은 공휴일이 아니다. 그래서 떡국 한 번 끓이지 못하고 지나간 적도 많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한국 사람들끼리 점심이라도 함께했지만, 두바이로 이주한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은 ‘명절을 어떻게 기념하느냐’인 것 같다.
어릴 때는 매년 돌아오는 명절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명절에 만나 한 끼 식사를 함께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별 대단한 음식이 아니어도 좋다. 음식을 나누고, 하찮은 옛날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참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구정이었다.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
별 대단하지 않아도, 따뜻하고 건강한 일들이 계속해서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