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뉴노멀 이방인>의 마지막 연재다.
그동안 약 20년 동안 외국에서 살아온 내 삶을 소소히 돌아보려고 시작한 브런치북.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두바이에 와서 출장으로, 휴가로 다녀온 나라들 이야기는 아직 다 쓰지도 못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주변 국가를 포함해 레반트, 북아프리카, 그리고 멀리 아프리카의 도시들까지. 오만,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사우디의 리야드와 제다, 이집트 카이로, 레바논 베이루트, 이란의 테헤란, 터키 이스탄불, 요르단의 암만부터 사해, 페트라, 와디럼까지. 그리고 모로코 카사블랑카, 케냐 나이로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지금 나열한 나라들 대부분이 2주 전 시작된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지역이라 더욱 씁쓸하다. 이 지역들에서 일하며 만난 사람들, 생각지 못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써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30회가 되어버렸다. 기회가 있으면 이 지역들 하나하나, 아니면 아예 ‘두바이’만을 주제로 브런치북을 하나 더 만들어 써봐야겠다.
외부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두바이와는 다른 모습들도 정말 많다.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팩트와 바이브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도 살짝 쓰긴 했었지만, 지금의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사막에 가면 여전히 낙타 농장을 하며 살아가는 베드윈들을 만나기도 한다. 아랍에미리트의 다른 도시에 가면 이 아라비아 반도의 원주민이었던 어부들도 만날 수 있다.
어떻게 낚시 그물을 만드는지, 신발은 어떻게 만드는지도 보여주신 어르신들도 있었다. 작은 대추야자 농장과 닭 농장을 운영하는 로컬이 초대해 주셔서 함께 차도 마시고,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수다도 떨고 농장도 구경한 적도 있었다.
물론 화려한 도시도 두바이가 맞다. 초호화 빌라부터 어디서나 보이는 스포츠카들, 늘 붐비는 명품관, 없는 게 없는 전 세계 브랜드들. 밤마다 이어지는 불꽃놀이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에서 펼쳐지는 LED 쇼와 분수 쇼, 호텔에서 열리는 파티들, 그리고 끊임없는 국제회의와 전시로 붐비는 방문객들과 관광객들까지.
그리고 2주 전,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고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긴장 상황 속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이 기간 동안 두바이 거주자들의 반응도 조금씩 달라졌는데, 대략 세 가지 정도로 나눠지는 듯하다.
1. 본사에서 두바이로 파견되어 살던 주재원과 가족들의 일시 귀국
미국 회사나 한국, 유럽 기업들의 현지 파견으로 이주해 살던 사람들 중 일부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족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재택근무나 대기 형태로 근무 방식이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일시 귀국을 선택한 경우도 있다.
2. 다른 선택지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대로 스테이
공사 현장 노동자, 청소 업체 직원들, 배달 서비스 등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본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피해 두바이에서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내며 살아간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를 믿고 있는 가족들이 살아가기 힘든 경우도 많다. 그래서 무섭고 걱정이 되더라도 다른 선택지가 없어 두바이에 머물며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3. 로컬인들과 로컬 회사들에서 일하는 외국인들과 가족들은 비교적 평소와 같은 일상
한국 뉴스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아랍에미리트나 사우디 회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족들은 비교적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회사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오피스로 출근하는 곳도 있다. 아이들 학교도 지금은 봄방학이지만 라마단이 끝나고 이드 휴일이 지나면 3월 말쯤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우리 가족은 이 세번째 카테고리 사람들 중 하나.
창문이나 문에서 조금 떨어진 안전한 곳에 있으라는 재난 문자가 하루에 한두 번씩 오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정부의 대응과 안정적인 시스템을 믿고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이번 사태 이후 불안해하는 외국인들에게 아랍에미리트 지도자가 했다는 말이 떠돈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모두가 에마라티다.”
어느 나라에서 위기 상황 속에서 이렇게 외국인들을 포용하는 메시지를 던질까. 문득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들도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잘 모르겠다.
이번 일을 겪으며 ‘고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내가 태어난 곳이 고향일까.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이 고향일까.
어쩌면 고향은 실제의 땅이나 공간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돌아가고 싶고, 추억이 많고, 마음이 가는 곳.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있는 곳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인정하는 그런 곳.
이번 중동의 긴장 상황이 먼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이미 유가와 물가에 조금씩 영향을 주고 있고,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 역시 여러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렇게 세계는 훨씬 더 촘촘히 이어져 있다.
'세계시민주의'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외국에서 오래 살아보니 더 실감한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단순히 한국인만은 아닌, 세계인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