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미술 일기
직접 작업한 작가가 작품을 소개해줄 때, 황홀함을 느낀 적이 있었나? 마치 싱어송 라이터의 라이브 음악을 듣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작업이 시작되었는지, 왜 그런 작업을 했는지, 작업하면서 있었던 어려움, 극복, 사랑의 스토리를, 그 스토리의 주인공과 함께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전시 오프닝에 작가가 있을 때 보는 전시는 잊지 못할 기억, 경험으로 남게 된다.
아쉽게도 항상 작가 설명을 들을 수는 없고, 오디오 가이드나 도슨트의 설명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보조 어시스턴트와 함께 감상을 하게 되면, 아트넷에서 조사한 27초보다는 그래도 오래 감상하게 된다. 다만, 재미가 없다는 문제. 내 페이스대로 감상을 할 수도 없고 질문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추가로 비용도 지불해야 하는 게 현실.
그러면 관람을 하면서 대체 무엇을 봐야 하는 걸까? 작가에 대한 정보나, "이거 어떻게 그렸지? 대단하다" "나도 그릴 수 있겠다 이 정도 그림은." "이거 뭐로 그린 걸까?" "얼마야? 왜 이렇게 비싸" "누가 사?" "멋지네" 이 정도의 대화를 하고 작품 옆 레이블을 본다. 작품 사진을 찍거나, 그 앞에 서서 '나'를 찍는 내 사진의 백드롭 정도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 직업 상, 전시장에 온 방문객의 리엑션이나 표정, 동선, 대화를 살짝씩 엿듣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나 혼자 미술 작품을 보는 것도 살짝 애매한데, 아이들을 데리고 유명한 미술관, 전시에 가면 사진 찍는 거 말고 아이들과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엄마, 아빠들이 많을 것이다(내가 그중에 하나였다ㅎ). 다 멋지고 훌륭한 작품인 건 알겠고, 아이들의 감성을 키워주기 위해 일단 방문을 했는데,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들은 보통 다양한 재료들로 만든 작품이나, 고양이 등 동물들, 좋아하는 브랜드나 제품 관련 작품들, 캐릭터 작품들 등 아이캐칭될만한 요소가 있어야 그나마 관심을 갖는다. 그러니 2D 평면, 회화 작품들은 27초보다 더 빨리 지나쳐 버리고 만다. 구상 미술도 아닌, 추상일 경우는 더 어렵다. (어른한테도 어렵다)
그렇다고 매번 작가에 대한 정보를 일일이 다 공부해갈 수도 없고, 어쩌란 말인가? 해서 책도 찾아보고 이쪽저쪽 써치도 해보며 나름 나만의 방법을 찾아왔다. 시작은 아이들과 전시 관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였지만, 사실 나 혼자 감상해도 즐거웠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
- 파블로 피카소
I paint objects as I think them, not as I see them.
- Pablo Picasso
작품의 사조나 배경 지식, 작가에 대해 공부하려고 하지 말고, 작가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나에 곰곰이 느껴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1
후루룩 지나가지 말고, 전부 다 한번 보겠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한 작품을 오래 쳐다봤다. 그냥 오래 보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2
질문들을 쓰고, 자료를 찾아보고, 소소하게 미술 일기를 써보고 여러 추론과 상상도 해보았다.
3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고, 작가의 생각이 느껴져 작품과 감정 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4
작품 감상이 위로가 되기도, 힐링이 되기도 했다.
5
주변에 대한 관찰력도 높아지고, 그동안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예민해졌다.
우리의 평범한 인생에서, 얼마나 촘촘히 사느냐가 인생의 퀄리티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는, 별일 아닌 일도 별일이 되는 것처럼. 작가가 그 한 작품을 작업하고 세상에 내놓기까지 걸린 시간만큼은 아니더라도(아, 그 시간만큼 보면 정말 더 많은 게 보일 수도!) 오래 보고 자주 보면서 질문하며 감상을 한다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듯.
미술 작품을 (오래) 감상하면서 생긴 질문들을 중심으로 한 글들을 쓸 예정이다. 함께 읽고 보고 느끼면서, 내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미술이 위로가 되고 인생의 영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