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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m Nov 16. 2022

고백 이전에는 죄가 없다

<인간실격> 속 요조의 자기 고백에 대해

 교양 수업으로 <동서양 명작 읽기> 강의를 듣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매주 수업에서 다루는 책을 읽어야 하지만 어쩌다 보니 개인 과제가 주어질 때만 책을 읽고 있다(내 게으름 탓이다). 운 좋게도 다자이 오사무가 쓴 <인간실격>을 다룰 때 내 감상문 차례가 돌아왔다. 덕분에 오랜만에 책을 읽은 후 수업을 들었다.




 <인간실격>은 요조의 삶에 대한 소설이다. 주인공 요조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인생의 밑바닥과 점점 가까워진다. 동반자살 시도, 알코올 중독, 모르핀 중독,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신병원 입원까지. 소설 후반부에서 그는 결국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말한다. 참 안타까운 인물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요조는 자신의 부끄러운 면을 낱낱이 읊으며 비통한 자기 고백을 들려준다. 그의 고백을 듣고 있으면, 연민이라는 감정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예민한 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교수님은 그런 그의 예민함을 ‘특권’이라는 단어로 요약하셨다. 무엇이 특권이라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 예민했고, 이로 인해 아주 이른 나이에 인간 혐오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지나치게 예민한 탓에 허위나 가식 같은 요령들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결국(그의 표현을 빌려) 어릿광대 짓으로 도피해 버린다. 그리고는 스스로의 어릿광대 짓 때문에 또다시 자기혐오에 빠진다. 그리고 결국 그 도피의 끝에는 인간실격이라는 결과만이 남았다. 이런 결말을 다 읽고도 요조가 가진 예민함을 저주가 아닌 특권이라 부를 수 있을까?




 교수님은 요조의 자기 고백을 언급하며 '고백 이전에는 죄가 없다'라고 하셨다. 자기가 자기 입으로 죄를 시인하고 입을 벌려 얘기하기 전, 모든 것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에서는 어느 것도 죄가 될 수 없다며. 요조가 가진 예민함이 주는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셨다. 


 요조는 아주 촘촘하고 섬세한 체를 가졌다. 그렇기에 죄들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때로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부분에 대해 자책감을 가지기도 한다. 이렇게 요조의 체에 걸러진 것들은 그의 자기 고백을 통해 입 밖으로 분출됐고 죄의 형태로 독자에게 전달됐다. 누군가 요조를 한심하고 죄스러운 인간이라 평가한다면 이는 요조의 자기 고백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고백 이전에는 죄가 없고 고백이 있기에 죄가 있다.


 요조라는 인물이 가진 매력도 여기에 있다. 민감함이 주는 매력 탓에 인간 실격이 아직까지 명작으로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걸 테다. 죄를 고백하는 행위가 어떻게 매력이 되는지에 대해, 교수님은 '반성'이라는 단어를 끌어와 설명하셨다. 돌아보고 뉘우치는 행위를 뜻하는 반성. 정반합에 빗대어 설명해 보자면 일반적인 사람들이 굳이 자신의 죄를 찾으려 하지 않고 일상을 영위하는 것은 ‘정’으로, 가만히 서서 앞만 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자세이다. 그러나 요조가 자기 죄를 고백하는 것은 ‘반’. 앞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자세이다. 과거를 훑어보는 성찰적 자세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반'의 행동은 아주 적극적인 행위다. 고백을 통해 자신을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주체화의 방법 중 하나라 말할 수 있다. 무덤덤하고 둔감한 사람들은 앞 보기에 충실하지만 요조는 자주 그리고 대체로 자신의 뒤를 본다. 그만큼 많은 죄를 발견하고 많이 고백한다. 




 가끔은 나는 요조처럼 자기혐오에 빠진다. 이때 말하는 자기혐오는 결코 우울한 단어가 아니다. 자신에 대한 싫증 없이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자기혐오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글은 무에 가깝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항상 꽁꽁 숨겨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자칫 드러냈다가는 쉽게 치부로 남는다. 그렇기에 대다수는 자기 확신이 넘치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그들의 삶의 자세를 배우기 위해 에세이를 읽고 특강을 듣는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죄를 모르는 사람들은 동경의 대상이 된다.


 예민함은 이런 사회 분위기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대다수가 인지하지 못하는 그림자를 찾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  과거를 돌아보고 부끄러워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죄를 시인하며 반성할 수 있다는 것은 적극성과 주체성을 가졌다는 하나의 증거이다. 민감함에 대해 긍정적 시선을 가져볼 만한 이유다. 이처럼 촘촘한 체를 갖고 사는 것은 아주 피곤하기 짝이 없지만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는다. 내 잘못을 홀로 되짚어보는 나약한 면이 특권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이며, 보잘것없어 보이는 요조라는 인간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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