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8~19세기 중국 덕분에 경제위기 극복한 미국,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 한다!
김종욱(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1.1 18세기 경제위기 극복의 원천을 제공한 대중국 무역
미국의 이익 차원에서 세계 곳곳을 힘으로 압박하고, 타국의 대통령을 납치하고, 공습을 가하고, 자기 땅으로 만들겠다고 윽박지르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서 세계시민은 분노하며 동시에 공포를 느낀다. 그런 미국도 18세기 영국과 유럽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하고,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지대한 도움을 준 것은 미국의 대중국 무역이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런 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경제 압박과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으르렁거리다, 언제 그랬냐며 지금은 화친의 손을 내밀었다. 2026년 11월까지니,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고 나면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자, 과거의 미국 건국 초창기로 돌아가 보자.
미국이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18세기 후반, 영국은 미국에 대한 경제봉쇄를 더욱 강화했다. 신생국가인 미국은 국가부도의 위기까지 치달았다. 영국은 미국인들이 100여 년 동안 이용하던 영국 항구 등을 폐쇄했고, 프랑스와 스페인도 미국 상업에 대해 해상에서 봉쇄를 통해 제약했다. 1780년대 후반 미국의 1인당 수출액은 1760년대의 70% 수준으로 추락했다.
미국은 이 위기 극복을 위해 1784년 2월 22일 조지 워싱턴 대통령 생일날 최초의 국제무역선 엠프리스 오브 차이나(Empress of China[중국의 여제])호가 뉴욕항에서 중국 광둥으로 출발했다. 국제무역선은 워싱턴 대통령의 명령으로 출항해서 1785년 5월 11일 약 14개월 만에 뉴욕항으로 돌아왔다. 이 한 건의 무역으로 미국 정부는 3만 달러의 이윤(1815년의 연간 토지 판매 규모가 150만 달러였으니, 3만 달러는 매우 큰 액수였다)을 얻었다. 주로 미국의 산삼과 중국의 차 교환을 통한 이익이었는데, 워싱턴 대통령은 “방금 이 항구에 도착한 단 한 척의 선박이 정부에 3만 달러를 납세”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중국을 오고 가는 미국 선박은 1785년 2척에서 1806년 42척으로 급증했는데, 배 한 척당 3만 달러의 세수를 정부에 납부했으니 약 126만 달러의 세수가 걷힌 것이다. 1795년 미국의 중국 무역은 영국을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다. 이 세수는 19세기 미국 산업화 착수의 기초자금으로 활용되었다.
미국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제국주의적 야욕으로 경제위기 극복의 중요한 ‘은혜국’인 중국을 압박했다. 1805년 미국 보스턴 상선 엔탄(Entan)호가 중국 광둥에 아편을 싣고 가서 판매했다. 아편 판매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이 출항 30여 년 후 아편전쟁이 발발했고, 1844년 중국은 망하조약을 맺고 미국에 통상권 일부를 양여했다. 즉, 영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로 인한 위기를 중국과의 무역으로 극복하고, 중국과의 무역에서 얻은 이익으로 산업화의 기초자금을 조달했던 미국이 중국을 침탈한 것이다. 이 침탈은 지속되어서 1899~1900년 미국은 중국에 대서방 무역에 개방된 무역항을 개방토록 압박했다.
미국의 건국 과정에서 중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미국의 성장 과정에서 중국이 어떤 의미였는지 관해서는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공식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99년 클린턴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이 탄생하기 이미 오래전부터 창의‧지식‧풍요의 보루로서의 중국이 미국인의 생활에 충격을 주었고, 중국이 발명한 인쇄술로부터 그들이 생산한 시문에 이르기까지, 의학과 수학에서부터 나침반과 인도주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선물 중 많은 것들이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이 세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미국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중국 역사의 풍부함을 알고 있다. 중국 인민이 이 위대한 나라를 창조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 인민의 재능을 안다.”
두 대통령의 공식 발언은 중국과의 외교를 위한 ‘립 서비스’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립 서비스’의 맥락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에 대한 클린턴과 오바마의 사유 방식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선물 중 많은 것들이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으며, “중국 인민이 이 위대한 나라(미국)를 창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18세기 건국한 미국은 경제위기를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해소했으며, 그 교역 과정에서 다양한 상품과 문화‧기술을 제공받으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세계질서는 문화와 기술이 뛰어난 국가의 문명을 문명 수준이 낮은 국가가 수용하며 성장했고, 그 국가 중 일부 국가는 혁신과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통해 더욱 뛰어난 문명을 창출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높은 문명은 낮은 문명국가로 수용되고, 높은 문명을 수용한 낮은 문명국가는 혁신과 절차탁마를 통해 더 높은 문명을 창달하고, 이 문명은 아래로 흐른 물이 증발하여 수증기로 하늘에 올라 다시 비로 내리는 원리처럼 문명은 끊임없이 변화‧순환‧발전했다. 문명은 약탈하거나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발달한 문명의 기술을 활용해 다른 국가의 약탈‧병탄에 활용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문제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은 다른 국가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문명의 힘으로 1823년 ‘먼로주의’ 발표를 기점으로 세계를 약탈‧병탄하는 방향으로 일탈했다.
※ 이 글은 황태연, 『공자와 미국의 건국(상, 하)』(서울: 넥센, 2020)에 근거해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