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추모 프로필을 신청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카카오톡 계정이 잘 남아있으니 굳이 추모 프로필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이런 서비스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동안 나눠온 대화들, 주고받은 사진들이 모두 그대로 남아 있는데 프로필 사진 옆에 국화 하나 단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냥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결국 추모 프로필을 알아보고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카카오톡 계정이 영영 유지될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인이 된 이용자가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1년 뒤 휴면 탈퇴가 진행된다고 하지만, 고인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번씩 이용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고인의 휴대폰 번호를 계속 가지고 있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해지하게 되는데, 해지된 번호는 얼마간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에 새로운 이용자가 배정받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재사용이 일정 기간 동안 유예되는 것을 에이징이라고 하는데, 관련 기사에 따르면 통신사에 관계없이 에이징 기간이 2023년 4월 1일부터 90일로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KBS뉴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37165)
해지일로부터 90일이 지난 후 누군가 고인의 휴대폰 번호를 배정받은 후에 그 번호로 카카오톡 계정에 가입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고인의 카카토옥 계정은 자동으로 삭제되고, 프로필은 '알 수 없음' 상태로 표시된다. 개인 대화기록은 남아있겠지만 더 이상 새로운 메시지를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90일이 지났다. 아직 계정이 남아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었다. 언제라도 누군가 그 번호를 배정받아 카카오톡에 가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필요한 서류들을 확인하고 다음 날 바로 서류 준비를 마친 후 카카오톡 고객센터를 통해 추모 프로필 전환을 신청했다. (https://cs.kakao.com/helps?category=226&locale=ko&service=8&articleId=1073205028&device=1) 통신사 증빙 서류를 준비하는 게 조금 번거로웠지만 다른 서류는 인터넷으로 충분히 쉽게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신청일로부터 2~3일이 지나자 추모 프로필 전환이 완료됐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너무나 신속하게 처리됐다. 전환이 완료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확인해 보니 프로필도 (국화와 함께) 고인이 설정한 그대로 남아 있고, 새로운 메시지도 얼마든지 보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앞으로 5년, 그리고 한 번 연장해서 최대 10년은 이렇게 계정을 보존할 수 있게 됐다.
언젠가는 보내드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매일 보던 그 프로필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 걸 알게 된다면, 그 순간 마주하게 될 내 감정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언제쯤 그 감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내 마음을 조금 더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었다.
여전히 메시지를 쓸 때마다 마음이 아프긴 하다. 저 사라지지 않는 1이 금방 사라질 것만 같고, 늘 한결같던 그 말투로 곧 답장이 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드니까. 습관이 참 무섭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시간을 벌었고, 그걸로 됐다.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선택지도 있다는 걸 그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