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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Oct 14. 2020

당신 앞의 못난 사람

무시와 존중 사이에서


"매일 신랑 와이셔츠 다리는 거 너무 귀찮아."

"그런 말 하지 말아라. 나는 평생 와이셔츠 다리는 게 소원이었다."

엄마와 이모의 대화가 멈췄다. 엄마는 바로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렸지만, 이모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쓸쓸하게 웃었다.

아빠는 월천 월급, 억대 연봉을 받는 하이칼라였다. 시골에서는 최근까지도 나라님이라고 대접을 받았다. 덕분에 나는 공주님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모부는 다니던 건설회사가 부도나서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모는 그 당시에 양장점을 운영했다. 미싱은 기본, 세탁소에서 볼 수 있는 뜨거운 다리미도 있었다. 남편의 와이셔츠를 깨끗하게 다리는 게 꿈이었다는 이모, 그게 귀찮다는 엄마. 엄마는 정말 아빠의 와이셔츠를 다리는 게 귀찮고 짜증 났을까? 이모는 아빠가 돈 잘 버는 직업이어서, 막냇동생이 부럽고 질투가 나서 엄마를 미워했을까?



아빠는 기분이 나쁠 때마다 엄마를 탓했다. 나를 혼낼 때마다 외갓집 식구들 이야기가 나왔다.

"외갓집 안보냐? 공부 안 할래?"

무시는 무시를 낳는다. 아빠는 엄마와 엄마의 형제들을 무시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증오하면서도 못 사는 엄마의 형제들을 무시했다. 나는 엄마를 아프게 하는 아빠가 싫었지만 아무 말 못 하고 가만히 있는 엄마에게 함부로 했다. 아빠는 내가 엄마처럼 게으르다며 혼냈다. 엄마는 내가 술퍼 먹는 아빠와 똑같다고 했다. 동생은 부모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반반의 유전자를 섞어 자식을 만들어 놓고 한쪽 유전자를 부정하면 그 자식은 어떻게 될까? 피가 섞인 사람들끼리 부모의 유전자를 놓고 싸우면? 정원이 있는 예쁜 전원주택에서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니 탓 내 탓 시끄러운 틈에 보이는 글씨가 있었다. 유명한 서예가가 선물로 준 글씨다.

"가화만사성"



싸움에 관해 언니와 동생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동생은 언니를 이겨먹으면 우선 기분이 좋다. 자존감도 확 올라간다. 져도 나이 더 많은 언니에게 졌으니 본전이다. 하지만 언니는 그렇지 않다. 이겨도 찝찝하다. 동생을 이겨서 어따 써먹을 것인가. 엄마한테 혼나기만 하고 지면 진대로 자존심 상한다. 이기나 지나 별 소득 없고 기분만 나빠지는 싸움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어렸을 때 형제들과 아무리 치고받고 싸웠더라도 나이 들어서까지 싸우면 곤란하다.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기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는 계속 만들어지는데 언제까지 남는 거 없는 싸움거리를 주고받고 있겠는가.

엄마는 외갓집 조카 누구에게는 사립대학교 학비를 내주기도 했고 다른 누구에게는 취업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했다. 경조사에는 꼭 가서 남들보다 더 많은 부주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도움을 줬어도 존경은 받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미움을 받았다.

엄마는 이모들과 감정싸움이 있을 때마다 이모들이 아빠의 직업과 지위를 질투하는 거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엄마를 속상하게 하는 이모들을 미워했다. 하지만 부모가 죽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의 동생이 생기면서 다른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모들이 나이 어린 막내사위에게 쩔쩔매고 눈치 본 이유는 그저 우리 가족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귀한 백년손님인데 혹시 잘못해서 동생이 책잡히고 살까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잘났든 못났든 동생의 남편이니까 존중해 준 것이다. 돈 잘 버는 나라님 동서가 아니었어도 말이다. 엄마는 먼저 결혼한 언니와 그의 남편을 존중했을까?

주변에 가까운 윗사람 (부모, 형제, 친구 그 외 이웃들) 중에 참 못나고 한심한 사람이 있다면, 은근슬쩍 꼬집었는데도 아무 말 못 하고 사는 게 우스워 보인다면, 한번 정도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팔자가 더 낫다고 그 사람의 빌어먹을 운명을 비웃지는 않았는지. 못난 그 사람은 당신의 잘난 운명이 부럽고 아니꼬워서 참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소중한 사람이기에 더 못난 당신의 수준을 맞춰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나의 모습이었다. 사촌 오빠는 내가 마치 공주님 같았다고 했다. 빛이 난다고도 했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카세트로 영어 테이프를 들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중학교 오빠들이 다니는 영어 영재학원에 다녔다. 사촌들은 우리 아빠가 엘리트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질투 어린 소리에 '그렇게 태어난 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어쩌라고.'의 태도를 가졌다. 그건 참 나쁘고 어리석은 마음이었다. 상대방의 잘못 보다 내 잘못을 먼저 깨달을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



https://blog.naver.com/leganceb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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