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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Sep 15. 2020

헤어짐을 인정하기

그리고 마음껏 슬퍼하기

아이 장난감을 하나 사줬는데 포장을 뜯자마자 부서져버렸다. 조립 로봇 종류는 인기 있는 것은 10만 원이 넘어갈 정도로 고가다. 기본 5만 원이 넘어간다. 조립 로봇 사주기 싫어서 '카봇' 안 보여줬는데, 코로나가 장기화되어 등원 못하고 있을 때 카봇, 또봇, 숫자 로봇까지 섭렵했다. 하나 둘 사주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사주는 것을 멈췄다.

오랜만에 마트에 들렀다. 참새방앗간에 온 김에 5천 원짜리 싸구리 변신로봇을 사줬는데 바로 부서져 버린 것이다. 아이는 그래도 새로 산 거라고 버리지 못하고 한참을 가지고 있었다.

사고 나서 몇 달이 지난 것 같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 고장 난 싸구리 변신로봇을 가지고 놀았다. 여태 버리지도, 놀지도 못하고 그대로 둔 것을 가지고 혼자 한참 역할놀이를 했다. 부서진 변신로봇은 다친친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혼자 집중해서 놀 때는 건드리면 안 된다. 괜히 말 걸었다가 같이 놀아달라 하면 음.... 솔직히 귀찮다.

오전까지 잘 가지고 놀다 등원할 시간이 되었다. 아이는 양치하고 옷 갈아 입고는 주방 정리하고 있는 나에게 왔다. 부서진 조립 로봇을 손에 쥐고 있었다.

"엄마, 이제 이거 보내줘야겠어."

대견하고 짠했다. 나에겐 그저 5천 원짜리 싸구려 장난감이었지만 아이는 다섯 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헤어짐"이라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래. 부서진 로봇 잘 가라고 해주자."

나는 아이에게 직접 보내주라고 했다. 아이는 씩씩하게 변신로봇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러고는 뒤돌아서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이를 안아줬다. 다시 쓰레기통에서 변신로봇을 꺼내도 된다고 했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굵은 눈물만 흘렸다.

나는 이것을 '건강한 슬픔'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것을 배운 날이다. 생각만 해도 울컥하긴 하지만 아이는 나와도 헤어질 것이다. 우리가 헤어지는 날, 오늘처럼 헤어짐을 인정하고, 잠깐만 슬퍼하고, 가끔씩 그리워하고, 열심히 잘 살았으면 좋겠다.

지난날을 후회하고 되돌리려 하면 할수록 인연은 추해진다. 헤어질 때가 되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보내주는 것, 그리고 마음껏 슬퍼하는 것.

젊은 시절 열심히 사랑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헤어진 연인이 보고 싶어 술 잔뜩 먹고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보지만, 다음날 돌아오는 것은 이불 킥이라는 것을. 설사 상대방이 연락을 받아줘서 재회한다고 해도 결과는 비슷하다.




엄마와의 헤어짐은 그러지 못했다. 살고자 하는 강한 희망은 사실 죽음에 대한 강한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엄마를 더 빨리 죽게 만들었다. 난치병일수록, 사망률이 높은 암일수록 죽음의 공포는 더 크게 다가온다.

3개월 시한부를 준 의사를 욕해대며, 수술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파는 영양제와 찜질기를 고가에 사며, 39kg의 암환자 엄마는 단식을 했다. 헤어질 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죽는 날까지 고통스러워하며 떠났다. 떠나기 3일 전, 엄마 몸에 모르핀이 흐르고서야 엄마는 편안하게 숨을 쉬었다. 죽음에게서 도망가려 하거나 암과 맞서 싸우려고 하면 할수록 죽음의 공포는 더 크게, 가까이 다가온다.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좋은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병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헤어짐을 인정하고 마음껏 슬퍼하고 나면, 삶 자체가 소중해진다.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굳이 관계하거나 말싸움을 하지 않는다. 곱씹지도 않는다. 그냥 흘려보내고 내 소중한 하루와 기분을 지킨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기 때문이다.




https://m.blog.naver.com/leganceb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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