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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동차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레미콘, 트럭, 경찰차, 구급차. 중장비차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아기를 키우면서 알았다. 도로에서 큰 덤프트럭이라도 발견하면 난리가 난다. 소리를 지르고 인사까지 하고 간다. 나도 아이를 따라 "삐뽀차다!" 소리를 지른다. 불도저와 로우더가 비슷한 모양인데 그걸 어떻게 구분해 내는 것도 신기하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동차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중장비 운전기사가 장래희망인 아이들은 없으니 말이다. 트렉터를 좋아해서 운전하는 4살 아이를 '세상에 이런일이'에서 딱 한 번 봤다.
중장비를 신기해하고 좋아하지만 장래희망은 변호사라고 대답하는 아이. 문제될 것도 없고 어쩌면 흐뭇하기도 하지만 부모의 의식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골든아워'를 읽고 생각에 잠겼다. 아이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해도 지지해 주리라 다짐하지만 차조심 다음으로 고민하는 것은 '위험한 일' 이다. 아기가 청소차 운전기사가 장래희망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꿈을 인정하고 지지해 줄 수 있을까?
'골든아워' 책에는 여러 응급 환자들이 나온다. 가장 많은 비율은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군인, 가정폭력, 건달 칼부림, 교통사고환자가 뒤를 이었다. 피가 쏟아지는 수술과정이 그대로 묘사된 내용은 읽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은 외면하고 살았던 현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시끄러운 세상에 관여하기 싫어 뉴스도 안보고 살았다. 석해균 선장의 이야기도 나에겐 남의 일이었다. 아기를 키우면서 나를 돌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사회의 문제이고 정책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고, 어차피 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니까. 이것은 세상을 외면하고 살기 위한 충분한 핑계거리였다.
가난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에 종사하다 크게 다쳤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헬기, 수술, 생명유지장치, 수많은 사람들의 수혈로 살아났는데 그 대가로 거대한 빚이 생겼다. 그들은 다시 일터에서 위험한 일을 하다 죽는다. 이 노동자에게 그저 삶과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운명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정폭력으로 장기가 다 터져 수술받고 며칠만에 깨어난 여자는 문고리에 부딪혀서 다쳤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직접 고발해야만 가해자가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폭력으로 인한 상해는 건강보험에서 진료비를 보조해 주지 않는다. 이 여자에게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냐고 다그칠 수 있을까? 나 살기도 바쁘고, 남의 일에는 함부로 관여하면 안된다는 인식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아닐까?
몇 년 전 군단위 종합병원에서 응급실을 없앤다는 뉴스를 봤다. 응급실을 운영하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데 소규모 지역병원에서는 응급실을 운영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농어촌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칠 위험이 크다. 밤에 사고가 나면 병원찾아 가는 동안에 죽는 경우가 생긴다. 석해균 선장의 일화로, 이국종 선생의 발언으로 외상외과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을 뿐 의료서비스의 자본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선진국을 단순히 경제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는 부와 권력은 그저 삶의 다양한 방식 중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이나 돈이 없는 사람이나 사는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에서 큰 사고가 나면 1시간 내에 헬기가 도착한다. 차량은 통제되지만 시민들은 응급환자를 구조할 때까지 기다린다. 이국종 선생이 국내에 도입하려고 한 선진국 응급의료시스템이다. 크게 다쳤는데 헬기가 올만한 장소여야 하고, 치료받을 돈을 생각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어서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전체 죽음의 30퍼센트가 예방가능한 죽음이고, 그렇게 죽는 사람들은 30~40대 우리나라 경제의 주역이라고 한다. 국가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이 개인의 돈이나 직업 때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국가의 정책, 집행, 예산, 선진국 시스템 도입. 나와는 관계없는 단어들이라 외면해 왔지만 그 정책을 만들어 내는 건 개개인의 인식이다. 응급환자를 구하는 헬기소리에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는 주민을 보고 욕했지만, 사회를 외면하고 살아온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커서 다양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대통령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요리사, 운전기사도 있을 것이다. "그런 위험한 일은 하면 안돼!" 라는 말에서부터 외면을 가르치는 것 같아 고민이 된다. 우선 헌혈의집에 가서 헌혈부터 하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