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주말, 아침부터 분주했다. 주말만 되면 바쁘다. 쉴 시간이 없다. 아기가 낮잠을 두시간 반이나 자주었는데 나는 종종거리며 설거지만 했다. 10분정도 식탁의자에 앉아 티비 좀 보려니 아기가 깨버리고, 다시 이유식에 점심에 설거지에 또 바빴다. 한숨 푹푹 쉬니 티비보고 웃던 신랑이 눈치채고 베란다 청소, 화장실 락스청소를 하러 갔다. 나는 하루종일 우울했다. 신랑탓은 아니거든. 쉬는 날인데, 나도 쉬고 싶어서 점심은 대충 떡국 끓였는데 왜 난 티비볼 시간이 없지? 신랑은 저녁 알아서 먹을테니 좀 쉬라고 했다. 물론 얼굴이 굳어서 곧 싸울 분위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오히려 평일보다 주말이 힘든 이유가 뭘까? 아기 재우고, 신랑 저녁 차려주고 밖으로 나왔다. 중국집에 들어가 자장면 한 그릇 시켜먹고 커피숍에 들어와 앉았다. '하루 일과는 완벽한데 나는 왜 우울하고 힘들지? 이 짓을 주말마다 반복해야 한다고?' 혼자 자책했다가 화났다가 우울했다가......블로그에서 서평단을 모집하는 글을 봤다.
"그나저나 나는 지금 과도기인 것 같아요"
나의 완벽한 하루일과를 기대평에 썼다. 이벤트 마지막 날이라 대충 급하게 적었는데 감사하게도 당첨이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책의 저자, 김재용 작가의 딸이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엄마가 없는 독자의 엄마가 되어줄 수 있으니 말이다. 고맙습니다.^^
책의 목차가 특이하다. 마지막 부분은 백과사전처럼 단어 색인이 들어가 있다. 다시 읽고 싶은 부분을 접어뒀는데 색인에 다 들어 있어 굳이 접을 필요가 없었다. ^^
"권태로운 일상,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파트를 읽으니 내가 서평단에 당첨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하고 너무 똑같았다. 티비만 보는 신랑, 재밌는 티비소리를 등지고 설거지 하는 나. 말 그대로 권태로운 하루. 나만의 고민은 아니구나. 서른을 갓 넘긴 모든 여자들의 고민이구나. 책은 나를 이렇게 토닥여 준다.
"제일 견딜 수 없는 건 나만의 커피 타임을 잃은 것이다."
내가 마시던 커피 모두가 감사히다. 정신없는 아침 냉장고에 박아놓은 커피, 아우 시원하다. 우울한 날 거품 잔뜩 얹은 라떼, 모카포트를 가스렌지 위에 올리고 불을 켤 때, 신랑과 싸우면 노트 한 권 들고 커피숍으로 피신와서 사먹는 아이스커피, 그리고 지금, 아기가 차에서 잠이 들어 책을 읽으며 먹는 종이컵 커피. 참 맛있고 참 감사하다.
다시 돌아온 주말, 아침 여섯시, 아기는 거실에서 놀게 두고 나는 장판을 켜고 누웠다. 신랑이 나와서 티비보는 동안 나는 한시간 정도 잤다. 늘어지게 잠자기 성공! 빵에 치즈바르고 우유 따르고 고급지게 계란후라이도 하고. 우아하게 아침밥먹기 성공! 빨래, 바닥, 청소거리는 평일에 보고 주말에는 티비를 보는거다. 티비는 등 뒤에서 들으라고 있는 기계가 아니라, 보면서 웃으라고 있는 기계다. 이렇게 재밌는 프로를 빵빵한 사운드바로 등뒤에서 듣고만 있었다니.
점심 즈음 "자기 쫄면 먹어? 라볶이 먹어? 아까 티비에 나온거 보니 쫄면이 먹고 싶네?"
"나 라볶이!!!"
"근데 분식집 문 닫았네? 돈까스 먹자."
"응? 집에서 만들어 먹는 거 아니었어?"
이 남편님...우울한 주말의 끝, 싸움의 시작은 '당신의 말 한마디'였습니다요~~~
돈까스에 나온 스프 아기 이유식에 반숟갈 정도 섞어주니 참새처럼 입을 쫙쫙 벌렸다. "그래, 주말에는 너도 이것저것 맛좀 봐. 세상엔 맛있는 음식이 이렇게 많단다."
신랑이 남긴 돈까스까지 클리어하고, 그제서야 신랑은 내가 돈까스를 좋아해서 임신중에 거의 매일 사 먹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돈 들어가는 건 똑같은 것 같아. 알아서해. 난 상관없어~!!" 신랑님 이제서야 내생각 좀 해주고.
"돈까스 진짜 오랜만이다. 아 행복해."
신랑이 다운받아 보고 있는 영화에 사람보다 더 큰 메뚜기가 나왔다. "어머나~~메뚜기 너무 커, 아이~무서워~" 콧소리까지 할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파트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다. 빛은 그 틈에서 들어온다." -레너드 코헨
나는 앞으로도 느긋하고 게으른 아침, 맛있는 점심, 재밌는 티비프로와 함께 완벽하게 틈있는 주말을 보낼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