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강스백 Oct 23. 2019

삶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구요?

시금치 에세이



시금치가 제철이다. 나는 시금치나물보다는 된장국을 끓여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섬초, 금치, 동초 모두 시금치를 칭하는 말이다. 눈 건강에도 좋고 심혈관에도 좋고 변비에도 좋고 항암효과도 뛰어나고 빈혈 예방에도 좋은 시금치. 시금치 하니까 시 짜가 생각나네.

시아버지는 시금치를 드시지 않는다. 먹으면 몸에서 안 받는 게 바로 느껴진다고 하셨다. 아니 이렇게나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시금치가 몸에서 안 받다니. 시금치 부작용을 검색해봤다. 신장 쪽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어머님께서 아버님 신장 이야기를 한 게 어렴풋이 생각났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수박도 안 드신다고 들은 것 같다.

아버님은 나이에 비해 정정하시다. 내년에 여든인데 운전도 직접 하신다. 얼마 전에는 자동차도 바꾸셨다. 안경도 안 쓰신다. 옷은 당신 맘에 드는 걸로 구입하는 멋쟁이시다.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안다.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예민하게 느끼고 관찰하는 것은 온전한 나의 몫이다. 아무리 영양소가 풍부하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내 몸에 안 맞으면 먹지 않는 것. 아버님의 건강비결은 아버님 스스로 당신 몸을 잘 보살피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암병원 근처 길가에는 현수막이 많이 붙어있다.

"항암에 좋은 ㅇㅇㅇ"

"신이 내린 음식 ㅇㅇ"

"ㅇㅇ농장, 암세포를 죽이는 ㅇㅇ"

몸에 암이 생기고 나서야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찾아 나선다. '항암'이라는 단어만 보이면 다 먹어야 할 것만 같다. 나는 그런 단어들을 보면 조용히 외면한다. 건강에 좋은 음식이 내 몸에 맞는 음식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암음식의 효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몇천만 원짜리 산삼 한뿌리보다 맛있게 조리해 먹는 양파 한알이 내 몸에 더 좋다고 믿는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온갖 약초와 녹즙, 야채수프를 수시로 먹은 엄마는 왜 남들보다 더 빨리 죽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말기암이어도 2~3년은 산다는데, 왜 우리 엄마는 암 진단받고 6개월 만에 그렇게 빨리 죽어버렸냐고.



여름이 시작되면 코를 찌르는 강한 향이 풍긴다. “치자꽃” 노란색 물이 우러나는 지차 열매는 알고 있었는데, 오래도록 나를 설레게 했던 치자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작은 화분으로도 팔지 않을까 싶어 인터넷 찾아보는데 익숙한 글씨가 보였다.

식도암.

‘민간에서는 식도암에 치자를 검게 볶아 가루를 만들어 술에 타서 먹는다.’

 엄마는 식도암이었다. 우리 집 정원에는 큰 치자나무가 있었다. 엄마는 투병기간 중 단 한 번도 치자 우린 물을 먹은 적이 없다. 아무도 몰랐으니까. 치자를 달여 먹었으면 엄마의 암덩어리가 떨어졌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마음가짐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재료 손질하고 만드는 데 세 시간, 정성 들여 만든 야채수프. 산림욕, 단식, 자연치유. 병을 고치는데 다른 사람의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돈이 많이 들고, 멀리 있다면 그것이 적절한 치료법이라 할 수 있을까? 막연한 어딘가에 꼭 낫는다는 치료법을 찾아 떠나는 것부터가 죽음에서 도망가려는 것 아닐까? 죽음을 피하려고 하니 오히려 엄마의 죽음은 더 빨리 찾아왔다.

황토로 만든 흙집, 예쁜 정원, 가족, 1억이 넘는 아빠의 연봉,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집을 가지고도 행복하지 않으니 다른 어딘가에 행복을 찾으려 기웃거리기만 했다. 치자뿐일까. 5년 된 통통한 더덕, 방금 낳은 유정란, 산에서 직접 찾은 약재를 넣고 푹 고아 만든 백숙. 가까이에 있는 것들의 치유력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치유법을 나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적용하는 건 내 인생을 남에게 맡긴 것이다.


서울의 병원 입원실에서는 처음 보는 암 종류 환자들이 많았다. 엄마보다 더 안 좋은 상태의 사람도 있었다. 우리 옆 환자는 구강암 4기라고 했다. 입술과 혀를 거의 도려냈고 수술 후 며칠간 기계에 의존해야 했다. 보호자와 잠깐 이야기하는데 대전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고 서울로 온 거라고 했다. 엄마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왠지 저 환자는 살 것 같았다. 그 환자는 온몸에 기계를 꽂고 특히 입 주변에 연결된 기계가 있었는데 혼자 밥을 먹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간호사들이 밥을 먹기엔 아직 힘드니 벨 누르면 와서 먹여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 환자는 간호사들이 가면 바로 고개를 젖히고 음식을 입에 넣으려고 애를 썼다. 기계가 터져서 응급상황이 생겼고 간호사들이 화를 내며 말렸지만 그 환자는 계속 음식을 먹으려 애썼다. 저 사람은 꼭 살겠구나.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고상하게 가만히 앉아 치료만을 기다렸다. 음식이 나와도 입맛이 없다며 먹지 않았다. 수술부위 소독하는 날 배에 있는 큰 수술 자국을 보고 울었다. 수술로 코가 막혀 기도삽관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데 코로 숨 쉬지 못한다며 울었다.

"엄마, 저 사람은 얼굴을 수술했잖아. 입술과 혀가 없으니 얼마나 불편해? 앞자리 아줌마는 방사선 부작용으로 듣지를 못한대. 엄마는 남들이 잘 안 보이는 곳이니 얼마나 다행이야? 잘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응? 엄마.... 좀 먹어."

엄마는 병원에 있는 내내 우울해했다. 엄마보다 늦게 입원한 환자가 퇴원하고, 엄마보다 더 안 좋았던 상태의 환자가 기분 좋게 퇴원할 때마다 나는 불안했다. 엄마는 왜 저렇게 병원에 오래 있으려 하지?

앞쪽의 환자는 병원에 입원한 순간부터 욕을 했다. 수술하고 나서도 정신을 차리자마자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며 욕을 했다. 다들 자는 밤에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혼자 욕을 했고, 낮에는 보험회사 직원과 통화를 하며 화를 냈다. 다른 환자가 조용히 좀 하라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받을 보험금이 많았나 보다. 아 저 사람도 살 것 같다. 삶의 의지는 이런 거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도, 그 불 안 함 속에서도 당연히 챙겨야 할 내 것은 챙겨야 하는구나.

엄마의 보험금은 엄마가 만져보지도 못하고 날아갔다. 분명 보험금은 엄마 통장으로 들어왔는데 쓴 내역도 모르고 사라졌다. 엄마는 억울해하고 슬퍼했다. 지마켓 결제 2만원. 가족중 누가 뭘 샀는지 묻지 않았다. 그냥 혼자 속상해하기만 했다.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사는 것. 엄마의 몸은 엄마 스스로 보살피지 못했다. 엄마는 죽기 전에 온전한 자신으로 살지 못한 것을 슬퍼다.

역할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나를 돌봐야 한다. 나는 누구의 딸이기 전에, 엄마이기 전에, 누나이기 전에, 딸이기 전에....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신 좀 믿는 여자의 밥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