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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Nov 04. 2019

미신 좀 믿는 여자의 밥심

돌솥밥 에세이

남편과 요즘 자주 싸운다. 밥 먹는 것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기운 없어하고 밥을 잘 안 먹어 고민이었다. 점심 도시락까지는 못 챙겨 주더라도, 영양제며 따뜻한 물, 미숫가루, 사과즙, 견과류를 가방에 챙겨준다. 이번 달에는 비타민 D와 오메가도 추가했다. 아침에 입맛이 없는 건 당연하니 스팸도 굽고, 저녁에는 밑반찬 한 가지씩 매일 새로 만든다. 그런데도 밥을 잘 안 먹는다.

밥을 잘 안 먹는 것도 문제지만 남편의 밥 먹는 태도가 더 큰 문제다. 밥 먹기 전에 한숨을 쉰다던가, 밥을 수저로 긁어먹는다던 다, 팔을 식탁에 걸치고 구부정하게 먹는다던가... 아님 밥그릇에 밥풀을 다 묻히고 밥 다 먹었다고 수저를 놨다. 어렸을 때 그런 행동을 하면 많이 혼났고 맞은 적도 있다. 아들이 그런 짓을 했으면 어떻게 쥐어박아서라도 고치게 하겠는데 남편은 어떡해야 할까?

일주일 전에도 크게 싸웠는데 또 싸웠다. 밥에서 묵은 내가 난다는 것이다. 이 인간이 진짜. 요즘 아침에도 새 밥을 한다. 전날 해놓은 밥이 맛이 없어서 식욕이 없나 싶어서이다. 그전엔 저녁에 밥을 많이 지어 아침까지 먹었다. 하도 밥을 맛없게 먹어서 임금님이 드셨다는 쌀을 주문한 적도 있다. 시댁이 쌀농사를 하는데 말이다. 밥을 하면 제일 가운데 부드러운 밥을 남편 퍼주고 그다음 아들 퍼주고 딱딱한 눌은밥을 내가 먹는다. 그마저도 아들 먹이는 거 뒤치다꺼리하면 나는 한참 후에 식은 밥을 먹는다. 그런데 밥 먹으면서 하는 소리가 가관이다.

남편이 퇴사를 하기로 했다. 남편 직업이 몸으로 일하는 직업이고, 운전도 많이 한다. 경력이 쌓이는 일도 아니라 일 그만두고 몸부터 만들자고 설득했다. 매일 아프다 아프다 하면서 걱정하고, 걱정하는 대로 계속 아프고 그게 반복되니 걱정보다 짜증이 더 났다.  두 달 동안 계속 감기에 걸리는 게 말이 되냐고. 이제 남편은 좀 기분이 안 좋으면 몸이 이상하다고 말하고는 진짜로 아팠다. 입 좀 다물라고 했다. 이 기회에 하지정맥 수술도 하고 다른 곳 검사도 하고 푹 쉬고 건강부터 챙기자고 했다. 외벌이에 모아놓은 돈도 없이 퇴사를 결정하는 건 말 그대로 모험이었다. 마누라가 남편 건강이 걱정돼서 일 그만두라고 하는데 한다는 소리가

"그럼 네가 돈 벌어 와."

남편이 연하였으면 정말 진심을 다해 때렸을 것이다.

 "입맛이 없어도 푹푹 떠서 먹어야 그게 영양분으로 가지. 차린 사람까지 힘 빠지게 왜 그래?"

"안 들어가는 걸 어쩌란 말이야?"

 "안 들어가면 그냥 일어나. 밥 좀 맛있게 재밌게 기분 좋게 좀 먹자고!!"



ㅡㅡㅡㅡㅡㅡㅡ


엄마는 음식을 삼킬 수 없었다. 물 한 모금도 삼키지 못했다. 음식을 앞에 놓고도 먹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살면서 무슨 죄를 지었길래 먹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일까. 정말 죽는다고 했다. 엄마의 모든 곳이 건강한데 목에 걸쳐진 암덩어리 하나 때문에 죽는다고 했다. 피검사 정상, 혈압 정상, 모든 검사가 정상이었다. 목구멍에 있는 암덩어리만 빼고.

어느 날, 엄마가 이것 좀 보라며 물을 꿀떡꿀떡 삼켰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물 날 것처럼 목이 먹먹했다.

“엄마, 정말 잘됐다. 얼른 밥 좀 한 숟갈 떠.”

“응. 이따가 정말 배고플 때 먹을게.”

“지금 한 숟갈 떠. 또 언제 못 먹을지 모르잖아.”

“지금은 괜찮아. 배 안 고파. 이따가 배고플 때 이거 다 먹을게.”

엄마에게 삼킬 기회가 왔다. 먹을 기회가 왔는데 엄마는 안 먹고 있었다. 아니, 두 달 넘게 굶어서 시한부까지 받은 사람이 먹을 기회를 미루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마가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배고프다고, 안 삼켜진다고 난리 치던 사람이 말이다.

그 후로 엄마에게 음식을 삼킬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게 기회였다는 것을 엄마는 알았을까. 알고도 외면했을까. 수술을 받고 암덩어리를 제거해서 다시 삼킬 수 있게 되었지만 엄마는 먹지 못했다. 이내 암덩어리가 다시 차올랐다. 옛 어른들이 한 끼라도 굶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아는 그 식음전폐의 무서움을 알았다. 음식을 삼킬 의지가 없으면 죽는 것이다. 엄마는 아빠가 산에서 구해온 산두릅을 먹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였다. 엄마가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음식을 삼킬 수 있음에 감사하지 않은 죄. 철딱서니 동생은 조미료 들어간 김치는 암환자가 먹으면 안 되는데 엄마는 삼킬 수 없으니 다행이라고 웃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조미료가 들어갔든, 음식이 맛이 있든 없든, 고기든 채소든 내 눈앞에 차려진 음식은 그 자체로 감사하며 즐겁게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럼 밥하고 국만 끓여놔. 내가 알아서 먹을게."

"가정 주부가 남편 밥 안 차린 다고 또 뭐라 하려고?"

 "아니. 내가 너 할 일 덜어줄게. 밥 차리지 마. 아기랑 먼저 먹어."

"알았어. 앞으로 알아서 먹어. 딴말하지 마."

아기 아침밥 먹이고 커피 한 잔 끓였다. 소파에 앉아 커피 한잔 하는데 남편이 나왔다.

 "어디 한번 밥을 먹어볼까?"

하고는 국에다 밥을 말아먹었다. 반찬도 없이 먹고 있다. 아.... 내 정신건강부터 챙겨야겠다. 저렇게 반찬도 없이 국에다 밥 말아먹고 싶었나 보다. 그랬구나.


밥 문제로 이틀 냉 전하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평생 따로 먹을 거 아니면 어떻게든 풀어야 하니까. 머리를 굴려 굴려 함께 먹어야만 하는 저녁을 준비했다. 남편이 백숙을 좋아하기도 하고 닭 한 마리 놓고 따로 먹으면 그게 더 무안하니 식탁으로 오겠지. 토종닭 백숙을 식탁에 올렸다.

 남편은 먹으러 오지 않았다. 슬금슬금 화가 나기 시작했는데 아들도 고기를 안 먹고 장난만 쳤다. 아기의자에서 아들을 내리고 나 혼자 분노의 닭다리를 뜯었다. 닭가슴살 벅벅 찢어서 닭죽 만들어버리고 잠자리에 누웠다.

아침에 일어나 닭죽을 데우려는데 남편이 이유식 냄비를 찾아 누룽지를 끓이고 있었다. 그러고선 밥 안차려 주니 못살겠다고 그만 살자고 했다. 또 싸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결혼 전 살던 집 뒤쪽 길에는 큰 저수지가 있었다. 산이 높아 저수지는 항상 그늘이 져 있었다. 저수지 입구에 세워져 있는 큰 표지판.

 "수심이 깊어 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들어가지 마시오."

그 저수지에선 아빠가 죽기 한 달 전에 어떤 여자가 죽었다고 했다. 다슬기를 줍다가 물에 빠져 죽었단다. 그리고 한 달 후 아빠가 물에 빠졌다. 함께 물고기 잡던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구하려다가 같이 죽었다. 다슬기 줍는 곳의 물이 깊은 곳도 아닌데, 아빠가 매일 그물로 낚시하던 곳인데 이상하기도 하지. 물에 들어가지 말랬는데 들어간 사람의 잘못은 제쳐두고, 나는 그 후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의 힘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밥상머리에서 모서리 쪽은 도깨비 자리라서 앉으면 안 된다고 했다. 밥을 구부정하게 앉아 먹으면 뭐가 들러붙는다고 했다. 미신이고 나도 피식하는 말들이지만 예부터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게 낫다. 보기에 안 좋은 건 안 좋은 거니까.

 휴. 내 욕심인 것을. 내 두려움인 것을.

 "미안해."

 남편에게 전화했다.

 "화해하려고 토종닭 백숙했는데 쳐다도 안 보니 얼마나 화가 나?"

"나도 욕해서 미안해."

"오늘 닭 새로 사서 백숙할 거야. 같이 맛있게 먹자."

아들은 눈치가 백 단이다. 저도 엄마 아빠가 싸울 때는 고기에 손도 안 대더니 이번엔 닭다리 두 개를 다 뜯어먹었다. 세 식구가 둘러앉아 백숙을 맛있게 먹었다. 아침에 닭죽도 예술로 되었다. 야채도 다져 넣고 녹두도 불려 넣었다. 색감도 예쁘고 냄새도 기가 막혔다.

 "야..... 이건 진짜 약이다. 보약으로 알고 먹어야 돼."

 "본죽보다 더 좋아 보인다."

 닭죽 하나로 훈훈하게 수저를 드는데....... 남편이 젓가락질을 이상스럽게 했다. 왼손으로 젓가락을 집게처럼 만들어 김치를 집는 것이다.

"이거 짠 밥 먹을 때 아주 유용해. 이것도 하기 힘들어. 그냥 안돼. 연습해야 돼."

"으하하하하하 푸하하 하하하하하"


 나는 웃어버렸다. 깔깔깔부터 히히히까지 모든 소리를 다 내며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석가모니에 버금가는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밥 먹는 태도가 무엇이며 자세가 무엇이던가, 그저 기분 좋게 밥 먹으면 그만인 것을. 가족과 함께 맛있게 먹으면 그걸로 땡인 것을.

어금니 꽉 깨물고 엄마미소를 지었다. 김치를 집어 남편 수저에 얹어주었다. 그 어렵게 연습한 왼손 집게 모양 젓가락질을 하지 못하도록. 내 남편에게 잡귀가 들러붙으면 그 귀신을 쫓는 것은 나의 몫 이리라. 훠이~ 잡귀야 물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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