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강스백 Aug 19. 2020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그것, 시작하기

오랫동안 미뤄뒀던 치과치료를 결심했다. 치과는 친해지기도 싫다. 정말 무섭다. 스케일링을 받을 때마다 고통스러워서 과거를 후회한다. 술 담배로 이를 혹사시키고는 양치도 안 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지금도 커피를 하루 한두 잔은 꼭 마신다. 사소한 습관 (양치질)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대가는 큰 통증과 두려움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아이 습관 만들기에 그렇게 공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다섯 살이다. 사회성을 배우는 시기인 만큼 친구관계도 궁금하고, 학습지도 기웃거리지만 나는 아이의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에 좀 더 노력한다. 밥 먹기 전에 손 씻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정리정돈, 바른 자세, 식습관,,,,, 그리고 양치질. 그놈의 양치질.

재난지원금을 어떻게 쓸까 고민했다. 생활비로 써 버리면 알게 모르게 돈을 다 써버릴 것 같다. 실제로 주유하라고 남편에게 재난지원금 카드를 하나 줬는데 한 달도 채 안돼서 거의 다 썼다고 한다. 좀 더 의미 있게 돈을 쓰려고 궁리하던 중 미뤄뒀던 치과치료가 생각났다.

치료를 좀 더 미루면 멀쩡한 윗니까지 뽑아야 한다. 오래전 아래쪽 어금니를 뽑았는데 그 후로 윗니 어금니가 점점 내려오고 있다. 아랫니는 임플란트하고 이미 내려온 윗니는 크라운을 씌워야 한다고 했다. 임플란트 안 하고 그대로 윗니까지 계속 내려와 결국 발치해야 한다.

치아보험도 들어뒀다. 재난지원금으로 치과치료를 받고 보험금을 청구해 현금으로 받으면 그야말로 알차게 재난지원금을 쓰겠구나.

치과 세 군데를 돌았는데 치과마다 진단이 다 달랐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를 좀 더 살리는 쪽으로 치료를 하기로 했다.

첫 치료 날, 누워서 입을 벌리는데 너무 무서워서 손에 힘을 계속 줬다. 선생님이 오늘 치료는 하나도 안 아프다고 했는데도 무서웠다.

"선생님, 무서워서 치과를 못 온 게 제일 커요. 너무 무서워요."

결국 마취를 하고 치료를 받았고 치료는 선생님 말씀처럼 순식간에 끝났다. 마취주사만 겁나 아팠다. 입이 얼얼하게 마취기운이 몇 시간 갔다. 진작 치료를 받았으면 아프지 않고 더 간단하게 치료가 끝났을 텐데.

두 번째 치료는 많이 아팠다. 치료받는 도중에 마취주사를 더 맞고 치료받았다. 임플란트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큰일이다. 그냥 임플란트 안 하고 살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선생님은 임플란트가 이번 치료보다 더 안 아프다고 나를 위로했다. 안 믿는다. 내 주변 사람들은 임플란트 다 아프다고 했다.

치아 한 군데 치료가 끝나고 보험계약서를 뒤적거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받을 수 있는 돈이 적었다. 이미 발치한 어금니는 임플란트 보장비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약하긴 했는데 크라운이나 레진치료도 치료비 모두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총치료비에서 30% 정도를 보험금으로 받을 것 같다. 재난지원금으로 이빨 치료하고 보험금 깡을 하려는 나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좋다. 그래도 좋다.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몇 년 동안 미루기만 했던 치과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시작을 했으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블로그 하는 법 | 블로그 강의를 결제하기 전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