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보러 가자, 땅끝 마을.

땅끝에 있는 바다를 찾다.

by LC
바다 보러 갈까.
어디로?
땅.끝. 해남 땅끝 마을.
에..?


겨울바다. 왠지 '겨울바다'라는 이름은 특별함을 선사해 줄 것 같다. 그런 느낌 때문일까, 온갖 곳에서 춥다 춥다 하고 있을 때, 문득 바람 쐬러 바다에 가고 싶었다. 땅끝을 만나고 싶었던 것일까, 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일까. 어디로 갈 지를 묻는 말에 무심코 "땅끝"이라고 했다. 전라남도 해남.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 한 곳이지만 서울에서 해남, 그것도 해남 땅끝 마을이라니.

땅끝을 향해 달렸다. 해남 땅끝 마을로 접어드는 길목, 구름 사이로 햇살이 떨어지고 있다.


내가 "바다 보러 가자"라는 말을 던졌으니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다 보러 가자는 말을 해 놓고도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던 나에게 "언제 갈 거야?"라는 물음이 던져졌고, "월요일"이라고 말했다. 왠지 그날은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았다. 조용히 바다를 보고 싶었다.


주말 내내 눈 이야기 때문에 세상이 시끌벅쩍했다. 제주도, 그리고 남쪽 지방에 눈이 많이 내렸다고 했다. 월요일 아침, 모두가 시끌벅쩍할 때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주변이 자동차로 꽉 차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전라도에 들어섰을 때 상상 이상으로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와, 예쁘다.


눈 덮인 풍경은 멋졌다.



해남, 땅끝 마을을 찾은 건 두 번째다.

2008년 여름. 대학생 시절, 친구와 둘이서 전국일주 무전여행을 하며 들렀던 땅끝. 그리고 2016년 겨울의 땅끝. 땅끝 마을은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금 더 정돈된 느낌이었다. 말끔해 졌다고나 할까. 조금씩 '관광지'다운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말고는 크게 변한 게 없어 보였다. 마을로 접어드는 길목의 거대한 돌덩어리도 그대로였고, 모노레일도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간표대로 잘 움직였고, '땅끝탑'이 서 있는 여전히 땅끝 바다의 파도가 힘차게 몰아쳐왔다. 8년 이라는 시간. 그동안 나는 변해있었다. 땅끝에 서니 그렇게 느껴졌다. 연인에게서 "너, 변했어"라는 말을 듣는 느낌이랄까. 대학을 졸업했고. 그동안 수 많은 내적 갈등과 외적 갈등을 겪었으며, 이상을 꿈꾸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던 젊은 시절의 패기가 조금씩 사그라들어버린 자리에는 현실과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골몰하는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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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4124 copy.png 2016년의 땅끝 마을 초입(위)와 2008년 여름의 땅끝 마을 초입(아래)


언젠가, 나희덕 시인의 '땅끝'이라는 시(時)를 읽게 되었다. 시를 읽고 또 읽을 때마다 2008년에 만났던 해남의 '땅끝'과 바다가 떠올랐다. 시를 읽으며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본다는 의미야"라고 말을 해 줄 수는 있었지만 그 의미가 와 닿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를 읽을 때마다, 젊은 날 내가 '땅끝'에서 느꼈던 뿌듯함과 포부가 떠올랐고 그 순간을 생각하며 전율을 느끼곤 했다.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 나희덕, '땅끝' 중.


삶. 절망. 위태로움. 그리고 아름다움.




IMG_1722.png 땅끝 산책로는 '진짜 땅끝', 땅끝탑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무심코 '땅끝의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름다움'을 보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수 많은 갈등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갈 때마다, '나'를 붙잡기 위해 무언가에 의지하거나 자극받을 만한 무엇이 필요했고, 이번엔 그것이 '바다'였나 보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민. 그리고 이곳이 절망의 끝일 것 같지만 끝없이 계속되는 절망.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

해남의 땅끝 마을. 땅끝탑 아래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만났다.

IMG_1739.png 땅끝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