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그곳에 발을 딛다.

기회의 땅이라 믿었던 그곳.

by LC

어쩌면 케케묵은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이제는 "그랬었군요"정도의 말이 나올 뿐이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퍼스 Esplanade. 시티 버스 터미널.

홍콩을 떠난 케세이퍼시픽 소속의 CX171항공기는 약 8시간을 날아 호주 퍼스(Perth)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나는 좌석 정면의 스크린을 바라봤다. 시간은 밤 11시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온도는 10도 안팎. 비가 내리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여름에서 겨울의 날씨로 한 순간에 바뀐 것을 제외하곤 다를 게 없었다. 옷을 두툼하게 입고 공항 벤치에서 밤을 지새운 후 아침에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갈 계획이었다.


호주에 가기로 한 것은 계획된 것이었지만 호주 땅을 밟을 무렵 나는 예상보다 더 가난한 상태였다. 인도에서의 사기 투어로 단 하루 만에 한 달치 인도 여행 경비를 몽땅 날렸고 그리스에서 배낭을 도둑맞으면서 돈과 옷, 각종 전자기기의 충전 어댑터를 잃어버린 탓에 많은 돈이 내 수중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애초에 빠듯한 예산으로 여행을 시작했기에 여행을 시작한 지 5개월 째로 접어든 지금 내가 가진 돈은 7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앞으로 7개월 정도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그렇다고해서 돈 때문에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호주에서 단기간 일을 하면서 여행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서 여행을 이어갈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두었고, 호주가 내게있어 기회의 땅이 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주의 중심 도시, 퍼스. 주도라고는 하지만 동부의 여러 도시 예컨대,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등에 비하면 작고 조용한 도시였다. 내가 퍼스로 간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호주의 여러 도시 중 퍼스로 가는 비행기 표가 가장 쌌고,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퍼스는 정말 좋은 도시라고 말했기에 퍼스로 향했던 것이다.


공항의 혼잡함. 입국 수속을 마친 뒤 공항 한쪽의 벤치에서 밤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 분이세요? 괜찮으시면 저희 집에 가서 하루 주무셔도 돼요"


어떻게 해야 할까. 호주에서 한국 사람은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올랐지만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었기에 그 사람을 따라갔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차는 주택가에 멈춰섰고 그 곳에서 호주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호주에 도착한 첫날. 빚을 졌다. 어쩌면 인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그렇게 호주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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