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호주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되고 싶었다.

떠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by LC

호주에서의 첫날. 공항에서 만난 한국 사람의 호의로 공항에서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퍼스 근교에 위치한 집에 들어선 나는 침대 옆 바닥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앞으로 펼쳐질 호주에서의 워킹 라이프(Working Life)에 대한 기대감을 품은 채 잠이 들었고 그렇게 첫날이 지나갔다.



이제 막 겨울로 접어든 7월 중순의 퍼스 시티.

이른 아침. 나는 백팩(게스트하우스)을 찾아 떠났다. 내가 찾아간 곳은 퍼스 노스브리지(Perth Northbridge)에 위치한 쿨리바 로지(Coolibah lodge)였다. 도미토리 가격은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비쌌지만 VIP카드를 만들어 왔기에 할인을 받을 수 있었고 시설도 다른 곳에 비해 좋은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서는 일자리 정보를 제공해 주고 일자리를 소개해 준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쿨리바 로지의 게시판에는 일자리에 관한 정보가 있긴 했지만 그 정보가 그리 유용한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쿨리바 로지에 한국인 스태프가 한 명 있어고 그에게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퍼스 시티의 지도를 펼쳐 놓고 잡 에이전시(Job Agency)의 위치를 알려 주었고 시즌에 따른 일자리 정보를 알려 주었다.


수요일에 호주에 도착한 나는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텍스 파일 넘버(Tax file Number, 일을 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일종의 신분 번호. 세금 납부를 위해 사용된다)를 받고 휴대폰을 개통했다. 토요일에는 같은 도미토리를 쓰던 아일랜드 출신의 말리키(그는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워홀러였다)와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내게 숙소 주변의 저렴한 식당 몇 군데를 알려 줬고 밤에는 라운지에서 함께 악기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갔다.

아이리시 가이, 말리키. 밤마다 그는 기타를 쳤고 나는 젬베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일요일. 호주에서의 첫날밤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 주었던 사람. 그가 다닌다는 교회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일자리 구하기가 많이 힘들어졌어."


이건 무슨 말이란 말인가. 호주는 기회의 땅, 어디서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온 나에게는 생뚱맞은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현재 겪고있는 상황을 이야기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최대한 빨리 일을 구해 여행을 위한 돈을 마련해야 했고 다시 떠나야 했다. 떠나기 위한 일자리가 필요한 나였다. 나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앞 이야기.

- 호주, 그곳에 발을 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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