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있을 때 잡아야 한다. 무조건 Okay라고 해야 했다.
나는 호주에 순수하게 워킹홀리데이를 하기 위해 온 것도 어학연수를 하러 온 것도 아니었다. 여행 중, 호주에 잠시 들러 필요한 여행 경비를 마련한 다음 다시 호주를 떠날 생각이었다. 호주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 있었고 여행 자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요일 오전, 교회에서 들었던 좋지 않은 소식들. 겨울이라서 일자리가 별로 없고 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 데다가 워홀러들이 부쩍 늘어난 탓에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 상황이 좋든 나쁘든 나는 부딪혀야 했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 해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월요일.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잡 에이전시(Job Agency)를 향해 갔지만, 'Open 10:30 ~16:00 Mon-Fri'라고 적힌 팻말이 달린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지금 시간은 9시 30분. 나는 발길을 옮겼다. Traveller's club 잡 에이전시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직원에게 말했다.(Traveller's Club은 나중에 the job shop으로 구직 관련 일을 넘겼다)
"hello, I'm looking for a job"
"Where are you from?"
"South korea."
"Cool, I have one farm job. Look"
직원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보여주었다. 10분 전에 도착한 팩스였다.
퍼스에서 동쪽으로 약 3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농장에 시급 18달러짜리 캐시 잡(Cash job)이 있다고 말했다. 일은 주당 45-50시간. 3개월 이상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당 800달러 이상을 벌 수 있는 것이었고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Ok"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퍼스 근교의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내가 다시 오겠다고 말할 때의 직원의 표정(이 정도 조건이면 괜찮은데 미친 거 아니야?라는 듯한). 그 표정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다.
두 번째 잡 에이전시는 주로 오피스 잡을 취급하고 있었고 주로 여자들의 비서 자리를 구해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력서(Resume)가 있어야지만 일자리 알선을 해 준다고 했다. 이력서가 없던 나는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세 번째로 방문한 에이전시에는 일거리가 없다고 했다. 10시 30분. 처음 방문하려 했던 에이전시로 향했다. 그곳에서 내어준 간단한 이력서 폼에 신상 정보와 아르바이트 경험을 적었고 그걸 본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Do you have a car?"
"I dont't have a car. but my friend have a car."
나한테 차가 있을 리가. 호주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나에게는 친구조차 없었지만, 일단 친구한테 차가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자 직원은 오후에 차를 가진 친구를 데리고 오라고 말했고 나는 알았다고 하고 잡 에이전시를 나섰다. 다시 가든 안 가든 그건 내가 나중에 결정할 문제였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마지막에 들렀던 잡 에이전시에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차가 있는 친구와 함께 2시까지 사무실로 오라고 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어떡하지. 그녀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올 줄 몰랐다.
친구가 없던 나는 밥을 함께 먹고 있던 형님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마침 그날은 호주에 온 첫날 공항에서 노숙하려던 나를 집에 데려와 재워주었던 형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던 중이었고 우리는 함께 잡 에이전시로 갔다. 잡 에이전시에서는 2주짜리 일거리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퍼스 근교의 와인농장에서 푸르닝(포도나무 가지를 다듬는 일)을 하는 일이었다. 오전에 다른 에이전시에서 제의받았던 것보다 금액 조건이 괜찮았고, 2주만 하고 돌아와서 공장에서 일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당장 농장으로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원이 농장주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직원은 지금 농장주와 연락이 되지 않으니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며 나를 돌려보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농장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말리키 그리고 쿨리바 로지의 한국인 스탭은 잘됐다며 축하해주었다. 일이 잘 풀리는 듯 했고 생각보다 일자리를 찾는 일도 쉽게 느껴졌다. 처음 들렀던 잡 에이전시에도 일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갔던 곳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으니말이다.
화요일 오후.
"일을 시작할 때 까지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잡 에이전시에 들어선 순간의 절망. 잡 에이전시의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Sorry"라는 말을 했다. 농장주가 주말 동안 다른 사람을 고용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구직 정보는 금요일 오후에 도착한 것이었고 주말 사이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처음 들렀던 잡 에이전시로 달려가서 물었다.
"You have a farm jab? you showed me yesterday."
"No job"
일자리 기회는 있을 때 잡아야 한다. 무조건 "okay"라고 말하고, 판단은 나중에 해야 된다는 것을. 그렇게 두 개의 일자리가 모두 사라졌고 시간은 흘러갔다. 내가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통장 잔고의 바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앞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