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다 보면 어둠이 깔렸다.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나간 첫날, 두 개의 일자리가 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곧 사라져버렸고, 나는 잠깐 동안의 몽상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사라진 두 개의 일자리. 그 이후, 나는 걷고 또 걸어야 했다. 걷는 것이 좋아서 걸었던 것이 아니다.
화요일의 절망이라고나 할까. 두 개의 일자리를 모두 놓쳐버린 나는 퍼스 시티 스테이션(City Station) 근처의 백팩커스에 체크인을 했다. 쿨리바로지보다 시내에 가깝고 쌌기 때문에에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기가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곧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셰어하우스(흔히, '셰어'라고 부른다)가 아닌 백팩커스를 선택한 것이었다. 하루 숙박비로 계산했을 때, 셰어보다 백팩커스가 비쌌지만 '셰어'는 적어도 2주 이상의 기간 동안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나는 백팩커스를 선택했던 것이다.
수요일부터 본격적인 구직 활동을 시작했지만, 일자리를 찾으러 다니면서 경험한 것은 환희와 기쁨이 아닌 절망과 불안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시내에 위치한 잡 에이전시(Job Agency)에 들러 일자리를 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잡 에이전시에 들러 일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호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구직 사이트와 일부 에이전시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새롭게 등록된 글들을 확인했으며, 그런 다음 점심 도시락을 챙겨 들고 퍼스 근교 공장 지대의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지원서(Application)를 썼다.
잡 에이전시와 공장 레셉션(Reception)에서는 요즘은 일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계절적인 비수기에 속하는 겨울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은 일거리가 많이 없다는 것이었다. 공장의 리셉션에서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 다시 찾아오라고 하며 나를 돌려보냈다.
나는 여름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호주에 여름이 오면, 그때쯤은 남미에 있어야 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일은 여전히 없었다. 그렇게 호주에서의 두 번째 일요일이 지났다. 그러는 사이 알고 지내게 된 사람들이 몇 명 생겨났고, 함께 차를 타고 도시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 있는 공장과 농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도시에서 수 백 km 떨어진 곳까지 가 봤지만, 그곳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나중에 연락 주겠다."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 사이, 내 건강도 많이 나빠졌다.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다 보니 몸의 밸런스가 깨져 버렸고(기온의 변화가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설상가상으로 호주에서의 구직 활동 기간이 길어지면서 오랫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것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끝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체력적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호주에서의 두 번째 일요일을 지날 무렵 내 통장에 남아 있던 잔고는 30만 원이 채 되지 않았고 이 돈으로 호주에서 10일 이상을 더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어떻게든 지출을 더 줄여야 했다.
구직 활동 외에 다른 활동을 하지 않던 나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매일 아침 백팩커스에서 제공하는 식빵에 잼을 발라 밀폐용기(반찬통)에 담았고, 그걸로 점심을 때웠다(아침, 점심 모두 식빵이었다). 공장 지원서를 쓰기 위해 공장을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지면 나무 밑에 앉아 밀폐용기에서 꺼낸 눅눅해진 빵을 씹었다. 빵에서는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눈물을 머금은 빵이 이런 걸까. '빵을 먹는 시간'은 내가 유일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오늘도 이렇게 무의미하게 하루가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에 두려웠다.
빵을 먹고 나면, 나는 또다시 걸었다. 공장 지대를 걸으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슬쩍 엿보았고, 혹시라도 공장을 기웃거리다 보면 나에게 관심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 공장 저 공장을 기웃거렸다. 그렇지만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일을 마칠 시간이 되면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차를 몰아 공장 지대를 빠져나갔다. 나는 그들이 지나간 길을 걸었다. 걷고 또 걷다 보면 어둠이 깔렸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가는 것이었다.
집에 전화해 볼까. 엄마한테 편도 비행기 표값만이라도 보내달라고 할까. 내 여행도 여기서 끝일까. 한국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남미 여행을 떠날까. 지금 끝낼까.
숙소에 들어서기 전, 벤치에 앉아 수십 번 생각했다.
내일을 믿어보는 것.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저녁 식사는 오늘도 손바닥만 한 중국 라면이었다.
앞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