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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Sep 21. 2016

상상하던 모습 딱 그만큼 : 몽골 테를지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을 때까지.

자연의 그 온전한 모습만 보아도 그것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 R.W. 에머슨


   장소 : 몽골 테를지.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역을 출발한 기차는 4박 5일만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나는 그곳에서 또 다른 기차에 올라 2박 3일, 장장 36시간 동안 몽골 초원의 중심 도시 울란바토르를 향해 갔다. 기차가 러시아-몽골의 국경을 지난 뒤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을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이라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그 위에 드문드문 세워진 하얀색 천막집(게르, Ger) 뿐이었다. 드디어 몽골이었다. 나는 몽골에서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고 싶었다. 책과 TV에서 보았던 초원.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게르에서 잠들고 싶었다.   

 

울란바토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징기스칸 광장'
징기스칸 광장 주변은 시내 중심가인 만큼 고층 건물들이 눈에 띈다.
해질녘의 울란바토르. 사람들은 징기스칸 광장 근처에서 만남을 가진다.


  비가 내린 뒤의 울란바토르는 파랬다. 초원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를 적셨던 비는 금세 파란 하늘로 스며들었다. 나는 도시를 떠나 초원이 펼쳐져 있다는 곳을 향해 갔다. 테를지, 테를지 국립공원(Terelj National Park)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울란바토르 근교에 있는 그곳은 관광객들을 위한 게르와 말들이 준비된 곳이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가든, 숙소를 통해 투어를 신청하든 그것은 자유였다. 원한다면 언제까지든 그곳에 머물 수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며칠째 머물고 있다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여름휴가를 온전히 몽골의 초원에서 보내고 있다는 사람들이었다.  


몽골 초원에 세워져 있는 게르. 내가 머물렀던 게르는 오른쪽에 있는 게르.
초원 저 멀리까지 초원이 이어진다. 말을 타고 저 너머까지 갈 수도 있다.


 울란바토르에서 70km 남짓 떨어진 곳. 초원들 사이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내가 상상하던 몽골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드넓은 초원. 더러는 풀을 뜯고, 더러는 초원 위를 달리고 있는 말.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 하얀색 천막 '게르'. 혼잡한 도시를 빠져나와 한시간 남짓 달려왔을 뿐인데 먼 과거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질녘, 연기가 피어오르는 목조 게르로부터 흘러나온 웃음소리가 초원에 울려 퍼졌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 앉는 대지는 고요로 가득채워졌고, 간간히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그 고요함 속을 파고들었다.


내가 탔던 말. 왜소해 보이지만 잘 달린다.
말은 초원에서 가장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위쪽 오른쪽 사진은 게르 내부.


  내게 있어 테를지의 초원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런 곳이었다.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일은 무엇보다도 신나는 일이었다. 지평선 너머 끝까지 펼처진 초원을 달리다보면 저 끝을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옛날 몽고족들이 말을 타고 유럽까지 갈 때의 심정이 이랬을까. 초원 위를 흐르는 바람의 상쾌함이 더해져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말을 타다 지치면 게르로 돌아왔다. 초원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새들의 지저귐을 들었다. 가끔은 새들의 지저귐 사이로 풀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저 내가 할 것이라곤 상상하던 몽골을 만끽하는 것 뿐이었다.


 상상하던 몽골의 모습, 딱 그만큼이 테를지에 있었다. 초원에 세워진 하얀색 게르. 폴폴 피어오르는 연기. 초원에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네온사인의 불빛도 가로등도 없는 초원. 어둠이 완전히 내려 앉을 때까지 아이들은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해질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게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초원에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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