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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Jul 06. 2016

바이칼 호숫가를 걷다 : 러시아 이르쿠츠크

고개 들어 먼 산을 바라보게끔 만드는 시린 바람이 부는 곳.

인생이 복잡한 게 아니다. 우리가 복잡한 것이다.
인생은 단순하다. 그리고 그 단순한 것이 올바른 것이다.

- 오스카 와일드(1854-1990).

  봄의 향기.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기차에서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6월 말, 7월을 코앞에 둔 시점이지만 이곳 이르쿠츠크에는 이제야 봄이 찾아온 것이다. 기나긴 겨울을 견뎌 내고 나서 찾아오는 봄이었기 때문일까. 이르쿠츠크의 거리는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공원에는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한쪽엔 꼬마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놀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들른 시장은 시끌벅적했고 사람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리스트비얀카로 향하는 미니버스에 올랐다.


  리스트비얀카. 바이칼 호수 곁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호숫가를 걷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장소 : 러시아 이르쿠츠크/리스트비안카 - 바이칼 호수.


미니 버스는 침엽수가 빼곡히 들어찬 숲을 가로질렀다. 버스에 함께 탄 러시아 아낙네들이 나를 흘깃 쳐다본다. 시차 적응에 완전히 실패하는 바람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나는 쾡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본다. 이제야 조금씩 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아직도 몸은 5시간 느린, 모스크바 시간에 적응되어 있는 탓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이곳으로 오면서 하루에 한 시간씩 시차가 생겼지만 몸은 느린 변화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리스트비얀카로 가는 미니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버스가 설 때마다 한 명씩 버스에서 내렸다. 길의 끝. 저 멀리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미니버스에 남은 사람은 둘 뿐이었다. 이윽고 버스는 호숫가에 접한 도로에 멈춰 섰다. 운전기사는 내게 내리라고 손짓한다. 버스 정류장의 구색을 갖춘 것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심지어 버스 정류장이라는 팻말도 없는 곳. 다만, 눈앞에 호수가 놓여 있을 뿐이다. 바이칼 호수에 간다고 했더니 너무나도 정직하게 나를 호수 앞에 나를 데려다 놓은 것이다. 뭐, 어쨌든 좋다. 호수다.



  바람이 불었다. 호수 위를 스쳐 지나온 바람이 호숫가로 불어왔다. 차다. 아직은 겨울의 흔적이 스며 있는 바람이다. 봄기운이 완연했던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느꼈던 봄바람과는 다른, 시린 느낌이 감도는 바람. 이제 막 산자락에서 눈을 녹이고 여기까지 날아와 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그런 바람이다. 호숫가에는 민들레가 시린 봄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겨우내 꽝꽝 얼어 있었을 호수는 이제 막 녹아서 티 없이 맑은 물을 찰랑찰랑 흔들고 있었다. 자갈 위로 천천히 다가와 으스러지는 물결을 보고 있자니 물속에 발을 담그고 싶은 충동이 인다. 순수. 그리고 거대함. 바다라는 착각을 할 만도 하지만 이곳엔 바닷가의 소금기 섞인 비린내가 없다. 오직 티 없는 상쾌함이 내 가슴을 파고든다.



  많은 이들이 극찬을 마다하지 않던 곳이 바로 이 바이칼 호수가 아니었던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중간 기착지 정도쯤 될까. 모스크바로부터 4박 5일 동안 달려온 기차에서 내려 조용히 휴식을 취할 만한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군가가 시베리아의 보석이라 불렀던 이곳 바이칼 호수. 그 보석이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장소라는 뜻을 지녔다기보다는 내게 값진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 고개 들어 먼 산을 바라보게끔 만드는 시린 바람. 바이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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