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공간에서 선택이 타인을 침범하는 순간
자동차 수리센터 대기실에서 뉴스 소리를 생활 소음 삼아 독서를 하다가 책을 덮었었습니다. 책을 덮은 이유는 소음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이 헛똑똑이의 집중을 침범했기 때문입니다.
그 소음은 한 사람이 시청하고 있던 유튜브였습니다. 광고가 나왔다가, 뉴스가 나오고, 어느 교수의 강의 영상이 이어졌습니다.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은 한 번씩 곁눈질을 보냈지만 시청자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듯 모두가 보는 방향만 함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몇몇은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틀었고, 몇몇은 괜히 자기 차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러 대기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라디오와 TV가 귀하던 시절을 살아온 세대에게서 이런 장면이 종종 나타납니다. 그 시절 공공공간의 소리는 늘 공유되는 것이었고, ‘개인 음향’을 분리해서 쓰는 문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어폰은 젊은이들의 물건처럼 느껴지거나 귀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해야 한다”보다는
“내가 있는 공간은 내가 쓰는 공간”
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침범이 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이 생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헛똑똑이의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가족이 모여 불편함을 계속 이야기했고, 심지어 카페에서 유튜브 소리를 켜는 사람이 있으면 한 명당 만 원을 내기로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술집, 카페, 공공장소를 일주일쯤 돌아본 뒤 아버지는 이어폰을 사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은 설득으로 바뀌지 않고, 습관은 관계 속에서 바뀐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