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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전드 박편 Jan 23. 2020

[레전드매거진] 작곡가 & 가수 장기호

한국 대중음악계의 척박한 토대에 새긴보석 같은 이름

2019년 11월호 [VOL.010]

에디터 조은경

사진 김한나 / 장기호님 제공

발행처 사운드캣


살아있는 동안 한국 대중음악이 가야 할 길과 롤-모델로서의
역할을 제시하는 음악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사람들의 정서에 깊게 파고들어 시대의 흐름에 자취를 남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음악은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기도 합니다. 
음악인들은 가사에 담긴 메시지와 곡이 환기시키는 힘을 통해 부디
인간의 정서를 회복하고, 
듣는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하기에 앞서 장기호 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떤 계기로 인해서였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즈음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즐길 거리(Media & Contents)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저에게 교회는 신성한 공간임과 동시에 즐거운 놀이터였습니다. 그곳에서 음악을 접했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며 불렀던 찬송가가 음악에 대한 저의 첫 번째 경험이었습니다. 


고교시절에는 공모전에 나가서 상을 받기도 하는 등 그림에 소질이 있었나 봐요.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미대 진학을 꿈꿨었는데, 저의 미래를 음악으로 안내해 준 것은 건강이 나빠져서 오랫동안 병실에 누워있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종종 듣던 트랜지스터 라디오였습니다. 병실의 차가운 매트리스에 반듯이 누워 오른손에 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귓가에 대고, 해가 뜰 때부터 달이 뜰 때까지 종일 라디오를 통해 팝 음악을 들었어요. 라디오는 저를 비좁은 병실로부터 끄집어내 팝의 황금기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비틀즈를 비롯하여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지닌 해외의 팝 음악들은 저에게 새로운 세계나 다름없었습니다. AKFN 방송의 ‘케이씨 케이썸(Casey Kasem)’ 디제이가 진행하던 ‘American Top 40’ 음악방송을 특히 좋아했어요. 그 무렵 한국에서는 대학가요제가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해외의 팝 음악에 매료됨과 동시에 대학가요제의 붐이 일어나면서 자연스레 저의 발걸음은 그림이 아닌 음악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고교 졸업 후 저의 오랜 음악 동료이자 선배들인 한상원 씨, 김광민 씨, 정원영 씨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우리에게 음악은 삶의 수단이기도 했지만,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대중음악의 세계적인 흐름 위에 놓인 한국 음악계의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서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다들 보다 넓은 세계에서 음악을 공부하고자 유학을 떠났고, 저 또한 남들보다는 조금 늦은 30대에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음악에 대한 호기심을 열어 주었다면, 당시 만난 선, 후배들에 의해 음악가 장기호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버클리 음대에서의 유학생활은 어떠셨나요? 


유학생활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먼저 유학을 떠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70년대 말에서 80년대 무렵 전 세계적으로 팝 시장이 크게 형성되면서 유수한 명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가수들의 세계투어가 끊이지 않았던 팝의 황금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세계 대중 문화권에서 격리되어 있었어요. 가까운 나라인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대중음악은 해외에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음은 물론, 유명한 팝 뮤지션들이 일본에는 공연을 하러 가는데 반해 한국에 오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러한 배경과 더불어 대중음악의 교육시스템 또한 전무한 상황이었죠. 클래식은 물론 팝과 재즈의 본고장인 서양사람들의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유학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함께 음악을 하던 선배들도 저와 같은 고민과 의문을 품고 저보다 먼저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후 그들의 편지에서 ‘이곳에는 음악의 이론과 연주, 제작 기법이 이론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 배울 점이 많다’는 내용을 접하고 저 또한 해외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버클리 음대의 비싼 학비를 스스로 충당할 수 있게 된 1995년 1월 30대 중반무렵, 음악에 대해 품고 있었던 의문들과 그동안 온갖 상상과 유추에 의해 음악을 만들어 온 경험들을 고스란히 안고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당시 ‘빛과 소금’ 4집 앨범의 ‘오래된 친구’라는 곡으로 대중들에게 한창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전성기의 인기를 내려놓고 떠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것만이 저의 음악적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 인가요?


1993년 ‘빛과 소금’ 이 3집 앨범을 발매하고 활동할 당시, 최초로 숭례문을 뮤직비디오 촬영 용도로 저희에게 개방했어요. 촬영은 MBC에서 했고,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그 영상이 송출되었습니다. 라이브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기 때문에 카세트테이프를 틀어 놓고 연주했어요. 지금도 찾아보면 유튜브에 남아있는데,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죠. 이후 2008년에 발생한 화재로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모로 참 안타까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앨범 또한 ‘빛과 소금’ 3집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그 이유는 1,2집과는 달리 회사로부터 독립되어 오로지 저희 멤버들(장기호와 박성식)끼리 순수하고 소박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저희가 표현하고자 했던 요소들과 색채가 빼곡히 담겨있기 때문이에요. 독립적으로 제작했기에 비록 제작비는 부족했지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음악이며, 개인적으로는 제가 추구하는 로맨티시즘을 나름 완성도 있게 표현해 낸 최초의 앨범입니다. 수록곡 중 특히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와 ‘슬픈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두 곡에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가장 잘 담아냈던 것 같습니다. 


대중음악 교육 서적을 출간하시게 된 것은 어떤 계기로 인해서였나요? 음악교육만화 ‘POP IT UP!’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지금과는 달리 이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대중음악의 지식적 체계를 쌓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은 미흡했어요. 실용음악학과가 생긴 것도 1980년대 후반인 근래에 들어서고. 대중음악에 관한 서적들도 한국인의 시각에서 쓰인 것이 아닌 해외에서 출판된 서적들을 번역해 편집한 것 위주였어요.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음악교육기관에서 처음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번역서적들로 수업을 하다 보니 한국의 정서와 교육 시스템의 실리와는 맞지 않는 부분들이 느껴졌어요. 그런 배경하에 대중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한국의 실용음악이론을 저의 입장에서 다시 정리해 출간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출중한 재능을 가진 민족입니다. 김연아, 박세리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 뿐 아니라 클래식 계열의 정명훈 선생님, 소프라노 조수미 선생님 등을 비롯하여 작은 나라에 이토록 각 분야에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유독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세계시장의 흐름을 타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 원인이 바로 대중음악의 교육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예를 들자면 현재 일본 재즈는 한국보다 한 세대 앞섰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이유는 재즈 연주자 ‘사다오 와타나베’가 버클리 음대에서 유학생활을 마친 뒤 재즈에 관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이론서적을 출간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 책으로 처음 재즈를 공부하기도 했고요. 저는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도로 가장 먼저 출간한 책이 바로 2008년 ‘실전 재즈 화성’입니다.


이론서적을 만들 때는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신중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수천 개의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들을 수백 개로 축약된 이론으로 한정된 지면에 담아내야 하는 작업이죠. 지금 와서 보면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저의 교재들이 나름 스테디셀러로 계속해서 널리 읽히는 이유는 배우는 사람들과 가르치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그들이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저마다 가진 배경적 지식과 상황, 능력에 걸맞은 가르침을 주는 티칭의 기술에 대해 고민하는데, 이런 설명의 기법 또한 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난해 출간한 ‘POP IT UP!’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겸비하여 대중음악적 유산으로서 세대를 아울러 깊이 사랑받는 수명이 긴 곡들을 토대로 음악을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적 지식과, 실용적인 기술의 기초적인 이론을 담아낸 음악교육 만화입니다. 처음에는 그림으로만 표현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아서 차선책으로 만화를 생각했어요. 평소 친분이 있던 후배 남무성 씨와 함께 시중에 나와있는 음악교육만화들을 살펴보며 틈틈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둘 다 바빠서 집중적인 작업은 어려웠지만, 몇 년간 거듭되는 편집 과정을 거쳐 지난해 출간에 이르렀습니다. 이 책은 세계 속의 팝 명곡들을 통해 “대중들에게 공감대를 줄 수 있는 음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제 나름의 고민과 통찰이 담겨있습니다. 



이 시대 음악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반드시 자신만의 창의적인 음악적 레시피를 찾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재즈 교육자 ‘Clark Terry’는 ‘Imitate, and then create!’라는 말을 남겼어요.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아 그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오마쥬 하는 것도 좋은 시도이지만, 결국 대중들에게 마지막까지 기억되고 남는 것은 그 분야를 새롭게 열어준 개척자입니다. 물론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개척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음악교육을 흡수하기 위한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 하며,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인내의 시간이 있어야겠죠. 그런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이야기죠. (웃음) 대중음악가로서의 가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음악적 창의력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장기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음악가의 삶에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필연적 숙제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살아있는 동안 한국 대중음악이 가야 할 길과 롤-모델로서의 역할을 제시하는 음악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사람들의 정서에 깊게 파고들어 시대의 흐름에 자취를 남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음악은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기도 합니다. 음악인들은 가사에 담긴 메시지와 곡이 환기시키는 힘을 통해 부디 인간의 정서를 회복하고, 듣는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에 음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형이상학적 감정을 발견하는 도구가 바로 음악이 아닐까요? 음악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작용하는 파동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감성적 만족감을 느끼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 힘은 곧 나를 채워주는 하나의 질서로 작용하고요. 


끝으로 내년에 ‘빛과 소금’의 30주년을 맞이하는데, 기념하여 작은 형태로라도 공연을 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많이들 보러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인터뷰 전문은 레전드매거진 10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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