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아가사 크리스티 후예를 만났다, 루이즈 페니

따뜻한 추리와 유머의 세계를 선사한 작가

by 임진

시간이 있을 때 다작을 한 작가의 책을 만나는 것만큼 행운인 것도 없다. 1년 전에 할런 코벤을 만났다면, 1년 후 여름휴가 때는 루이스 페니를 만났기 때문이다.


평범한 워딩의 제목이 아니어서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도 약간의 낯섦이 있었다. '빛의 속삭임'이라니. '치명적인 은총'은 또 어떤가. 그런데 책장을 넘기는 순간, 가마슈와 장 기를 만나게 되는 순간 그런 낯섦은 오히려 색다른 축복처럼 나에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거기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보았다.


다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르 탐정이 다소 독특하고 괴짜 아닌 괴짜같은 인물임에 반해 루이즈 페니의 가마슈 경감은 따뜻하고 온화하고 부드럽다. 흔히 추리소설의 주인공들이 독특하고 다소 괴팍한 면모도 지니고 있는 것에 반해 가마슈 경감은 너무도 인간적이고 따뜻한 추리를 선보인다. 물론 경찰 내부의 갈등이 있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다혈질인 부관 장 기를 이끌면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간다.


이 책은 독특하게 주인공은 가마슈 경감이지만 사건이 발생하는 지역은 쓰리 파인즈라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마을이다. 그 마을은 예술가 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데 시리즈가 이어질 때마다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조용한 마을에 살인사건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때마다 가마슈가 파견이 되어 거기에 머물면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식이다(물론, 다른 배경으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쓰리 파인즈가 배경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한 추리물이라기보다 인물 간 관계,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사건들이 발생해서 읽고 있으면 역사적이면서도(캐나다 퀘벡을 배경으로 해서 프랑스인, 영국인이 함께 공존하는 특징) 또 철학적이고, 한편으로는 경건한 느낌마저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이 매우 철학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나의 주장에 가장 부합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문체마저 시적이고(실제로 가마슈는 시를 자주 읊기도 하고 시인도 등장한다) 아름다워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다.


또 하나 유머스러운 면들도 매력적이다. 주인공들 간의 대화에서 각 인물의 속마음에서 드러나는 말에서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데 예를 들어 매우 친한 이웃 사이이지만 귀신이 나올 것 같으면 속마음으로 저 친구부터 데려가게 기도한다던가, 가마슈가 시를 읊을 조짐이 보이면 부하인 장 기가 도망갈 궁리를 한다던가 등 솔직한 마음이 그대로 나와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면모인 것이다.


'빛의 속삭임'을 읽은 후 기분 좋은 충격을 받으며 시리즈의 첫 작품인 스틸 라이프부터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넉넉한 여름휴가 기간이었던 터라 충분히, 오롯이 가마슈에 쓰리 파인즈에 빠져 지낼 수 있었다.


다만, 짧고 간결한 문체를 좋아하거나 빠른 전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름다운 문체와 여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느끼고 싶다면 단연코 강추한다. '스틸 라이프'부터 시간 순서대로 시리즈를 계속 읽는 것을 추천한다.


번외로 책 '스테이트 오브 테러'는 루이스 페니가 전 미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과 공동으로 쓴 작품으로 아무래도 공동 저자인 힐러리가 국무장관이어서 그런지 미 국무장관이 주인공이다. 배경도 이란, 파키스탄 등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져서 루이즈 페니의 다른 스타일을 보고 싶다면 읽어 봐도 좋을 듯하다. 끝부분에 어떤 인물들이 깜짝 등장하는데 이 시리즈를 보았다면 매우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 내가 읽은 책

- 빛의 속삭임

- 치명적인 은총

- 스틸라이프

- 살인하는 돌

- 가장 잔인한 달

- 냉혹한 이야기

- 네 시체를 묻어라

- 스테이트 오브 테러

- 아름다운 수수께끼

- 빛이 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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