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지닌 작가
한동한 추리소설을 멀리했다. 단편적인 것들을 아예 끊지 못했지만 본격적으로 읽기는 부담스러웠다.
쉴 새 없이 읽어 내려가서 그랬는지 과몰입형 파워 F라 그랬는지 몰라도 건강검진을 위해 무슨 통에 들어갔는데 마침 전날 저녁에 보았던 책에서처럼 감금된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원래도 폐소공포증이 없었던 건 아닌데 마침 그때 그런 책을 읽은 것이 영향이었다는 생각에 잠시 책 읽기를 중단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동안 추리소설, 스릴러를 멀리했다. 대신 조선시대 등을 배경으로 한 책들을 읽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다고 또다시 추리소설, 스릴러 분야에서 어슬렁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대신 이번에는 너무 무서운 것보다는 가볍게 그야말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다시 이 장르 속으로 들어온 것이 미셸 뷔시의 '검은 수련'이었다. 어떤 내용인지 다 알지 못하고 모네의 유명한 작품인 수련을 배경으로 상상력을 덧붙여서 쓰인 책이라는 것만 알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한 멀리하려던 그 장르에 다시 빠지기 시작했다.
'검은 수련'은 세대가 다른 세 여성이 등장한다. 어린 여자 아이, 매력적인 젊은 여인, 할머니. 실제 모네가 그림을 그렸다는 연못과 방앗간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드러나고 갑자기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미남 형사. 이 형사는 매력적인 젊은 여인이 피해자와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인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린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실제 모네가 수련을 그린 공간을 배경으로 가상의 이야기가 가미되었는데 작가는 세 여인의 각각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면서도 모네가 왜 이곳에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도록 마을 지베르니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묘사한다.
그리고 세대가 다른 여인들의 이야기가 한 곳으로 모여지는 지점에서는 그야말로 도파민이 터져서 실제 범인이 드러나는 그 순간까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한다. 예술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있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 전개에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카프카가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 책이 그랬다. 하도 얼얼하여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움과 스릴러를 동시에 잡은 미셸 뷔시 작가는 나에게 확실히 인식되어 또 다른 책으로 이끌었다. '그림자 소녀'였다. 이 책들을 다 읽고 찾아보니 아주 유명한 책들이었다.
그 시기에 나는 뭐했었지 싶을 정도로(물론 우리나라가 아니어서 그럴 수 있지만) 프랑스 내에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비행기 사고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아기. 두 집안이 서로 자신의 손녀라고 싸우고 그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 책은 정작 그 소녀보다 주변인물들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술적인 감각을 지닌 작가라 그런지 배경 묘사가 탁월해 그 점이 한층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제는 그 작가의 세 번째 책을 읽고 있다. 이 두 책 보다 압도하는 힘은 다소 떨어지는데 이 두 책이 워낙 흡입력이 있으면서 배경을 묘사하는 힘이 탁월했기에 약간은 힘을 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힘은 뒷부분에 있으므로 끝까지 읽기 전까지는 모른다.
이토록 화수분처럼 좋은 책들이, 재밌는 책들이 어느 순간 뿅 하고 등장한다.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미셸 뷔시의 남은 책들을 아껴 읽으며 올 한 해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많은 분들도 그러시길.. 검은 수련, 그림자 소녀를 추천한다.
*내가 읽은 책
- 검은 수련
- 그림자 소녀
- 절대 잊지마
- 내 손 놓지마
- 엄마가 틀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