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공무원의 세계

의전의 끝(f. 엘리베이터 잡기)

by 임진

공무원의 세계에서 의전은 대단히 중요하다. 의전에서 시작해 의전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예전 비해 많이 간소화되고 사라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여전한 부분은 꽤 있다. 행사가 열리면 보통 해당 팀의 전 직원들이 동원되는데 그중 의전에만 동원되는 인원도 상당하다.

그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엘리베이터 잡기이다. 물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과하다는 데서 발생한다. 엘리베이터 관련해서 특히 그렇다.


한 명의 주요한 인물이 방문하면 전체 엘리베이터를 통제하고 층마다 직원들을 배치시킨다. 다른 직원들이 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요즘에는 좀 나아져 층마다 직원들을 배치시키지는 않는데 특정 층의 운행을 기계적으로 중단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누군가를 위해 그 시간 전체 엘리베이터는 운영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그 건물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다른 층이나 1층으로 이동할 때 계단으로 해야 한다.

더 가관인 건 1층에서는 그분 혹은 그분들이 타기 쉽도록 엘리베이터를 잡아놔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다른 층은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아 입구에서 들어와 바로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그마저도 직원을 배치시켜 걸어오자마자 바로 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일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그 일을 또 해낸다.

생각해보면 다 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극진한 대우를 받고 누구는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대우가 합당하다 느껴지면, 즉 누군가가 만족했다 하시면 그것이 관행이 되어 다음부터 엘리베이터를 잡지 않는 과들은 행사 수행에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잠시 기다렸다가 직원들이 내리면 타고 그게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모든 것이 통제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맞는 것일까? 시대는 변하는데 갈수록 이런 의전은 고착화되고 디폴트가 돼버리는 듯하다. 한 번 이렇게 되면 행사가 끝날 때도 누군가는 행사가 열린 그 층에서 대기해야 한다. 또다시 엘리베이터를 잡기 위해.

재밌는 상상을 해봤다. 세계는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절정으로 모든 것이 무인화되고 쉽고 간편한 일은 로봇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의전만큼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인간이 더 이상 그 일은 하지 않지만 대신 로봇이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다.


이런 관행 아닌 관행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있다. 기관장이 앞으로는 이렇게까지 하지 말라고 말하면 된다. 손님이 오면 기관장이 1층에 내려와 손님을 맞이하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나중에 수고했다가 아니라 다음번에는 본인이 안내하겠다고 하면 된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끝나면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만 하니 반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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