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직장인의 출근길

폭우가 쏟아져도 출근은 멈출 수 없다.

by 임진

비는 계속 쏟아졌다. 어제 퇴근 무렵 이미 호우주의보가 발령됐고 밤 사이 세차게 뿌려댔지만 아침에도 좀처럼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침에 겨우 눈을 떠 출근 준비를 하며 틀어놓은 뉴스에서는 그치기는커녕 비가 더욱 쏟아질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가뜩이나 피곤하고 가기 싫은데 비까지 뿌려대니 이건 뭐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상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긴 하다. 아무튼.


'오늘 하루 휴가를 낼까? 가만 보자 휴가가 얼마나 남았나 보자.. 아차차 지난주에 한 번 썼지?' 지난주 휴가를 한 번 쓴 터라 다시 쓰는 건 어쩐지 눈치가 보였다. 어차피 내 일을 내가 하는 거라서 조정해서 하면 되는데 그래도 눈치가 보였다. k-직장인 숙명이 아닐까 싶다.


오늘 말고 더 가기 싫은 그날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출근길에 나섰다. 다행히 집에서 역까지는 걷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고 비도 다소 적게 내리는 소강상태여서 그럭저럭 괜찮았다.


문제는 언제나 타서부터였다. 비가 쏟아져 내리니 사람들이 지하철로 많이 온 것 같았다. 언제나 붐비는 지하철이었지만 오늘따라 더 붐볐다. 틈새 사이에서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갑자기 바지 끝이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원인을 따라가 보니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우산을 들고 있는데 그 끝이 내 바지와 맞닿았다. 윽. 비올 때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순간 중 하나다. 비좁은 틈새에서 피할 방법은 살짝 몸을 돌리는 것뿐.


그렇게 몇 번의 지하철을 갈아탄 후 겨우 회사가 있는 역에 도달했다.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는데 입구 쪽에 사람들이 꽤 서 있었다. 보아하니 집에서 나올 때와 달리 본격적인 폭우가 내리고 있는터라 사람들이 우산이 있음에도 선뜻 움직이지 못한 탓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이 비가 잠시 주춤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지만 시계를 보아하니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부지런히 걸어야 겨우 세이브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섬주섬 우산을 펴서 걸어가는데 비가 내리는 속도와 양이 훨씬 많았으므로 옷은 빠른 속도로 젖기 시작했다. 겉에서부터 젖기 시작하는데 하도 많이 젖어가는 통에 우산이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방과 신발과 옷, 머리를 제외하고 다 젖은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런 폭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는 작은 우산을 쓴 탓이기도 했다.


그렇게 겨우 겨우 도착하니 동료들이 이미 와 있었다. 다들 폭풍 같은 시간을 뚫고 온 승리자들이었다. 아니 k-직장인들이었다.


흠뻑 다 젖고도 출근길만으로도 지쳤어도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앉아할 일을 시작해야 하는 우리는 k-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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