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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진 Jul 24. 2022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죄가 없다.

여름철 장염과의 사투, 그 범인은?

장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차가운 음식에 취약하다. 특히 여름철에는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차가운 것을 먹을라치면 배탈이 나기 일쑤여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매번 조심 또 조심한다고 하지만 매년 여름이면 한 번씩은 꼭 피할 수 없이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연례행사다. 


그런 이유들로 보통은 더운 여름에도 아이스가 들어간 것은 잘 먹지 않는 편인데 또 아예 끊을 수도 없다. 외부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가는 길에는 따뜻한 것을 시킬 수가 없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갈 때가 그런 편인데 길에서 마스크 때문에 먹지 못해 내내 들고 가는데 이 때는 뜨거운 것을 들고 가는 것보다는 차가운 것을 들고 가는 게 낫기 때문에 아이스를 들어간 커피를 시키는 편이다. 


그러면 커피숍을 안 가거나 안 시키면 그만인데 또 점심-커피 코스가 K-직장인들에게 고착화되어 있어 바꾸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나만 안 먹겠다고 하면 왜 안 먹느냐고 백번을 물어보기 때문에 그나마 타협점을 찾아 아아를 시켜서 사무실까지 들고 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얼음이 다 녹아 미지근해지면 그때 먹는 신공을 발휘한다. 


그렇게 조심한다고 해도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아이스크림, 수박 등 차갑고 시원한 것을 먹어 온갖 세상의 신들을 소환하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 이후 다시는 차가운 것을 먹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이스크림, 수박, 냉면 등은 금지 음식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그토록 주의를 기울였건만 또 언제 차가운 것을 먹었단 말인가? 아직도 냉장고에 있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은 그림의 떡처럼 보기만 하고 먹지 못하고 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먹을 걸. 그러면 억울하지도 않지. 괜스레 서러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근래에 차가운 것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고작 밍밍해진 아아가 전부였다. 어찌 된 일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에 얼음물을 들이켰나? 아니면 아아를 먹을 때 얼음이 미쳐 다 녹기 전에 먹어 그런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어지는 의문 속에서도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병원을 찾았다. 만약 다시 차가운 것을 먹어서 그런 거였다면 먹지도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물어봐야겠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 선생님은 내 증상을 듣더니 질문을 했다. 


"최근 회나 해산물 종류 음식을 드신 적 있나요?" 


아뿔싸! 3일 전에 집 앞에 연와와 육회를 전문점으로 하는 음식점이 생겨 포장을 해와서 먹은 적이 있었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그날 유독 더웠는데 걸어오는 도중 어쩌면 상했을 수도 있었다. 먹을 때는 맛있게 먹었던 터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꼭 그게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48시간, 72시간 뒤에 증상이 나타나고요. 다행히 증상이 심하지 않으니 앞으로는 조심하시면 됩니다. 주사까지는 맞을 필요 없고 약만 잘 챙겨 드세요."


그렇다. 차가운 게 문제가 아니라 여름철 육회, 연어가 상해 그것으로 인해 탈이 났던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그 얘기에 마음이 놓였다. 차가운 것을 먹지도 않았는데 차가운 것 때문에 탈이 났다고 생각해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뭔가 서글퍼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도 못 먹는다면 앞으로 차가운 것은 손에도 대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니. 차가운 것이 아니었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누가 들으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차가운 것뿐만이 아니라 음식 자체를 조심해서 먹어야 하는 점에서 더 번거로워졌다. 그러나 그동안 노력해 온 것은 허사가 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을 얻는다. 회 종류야 여름에는 조심해서 먹으면 되는 거고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아아는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 먹는 것 정도는 괜찮으니 말이다. 


아아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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