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태풍과도 같은 계절을 지나는 것이다.
책, <태풍의 계절> 페르난다 멜초르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태풍 같았던 소설이다. '태풍의 계절'은 21세기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어두운 성취라 불리며, 멕시코의 최빈곤층의 삶을 적나라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문제작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누군가는 과장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작가는 자신의 진짜 삶이었다고 진솔하게 말하는데 '진짜 실상이 아니면 허구적으로 꾸며낼 수 있나'하는 적나라함에 작가의 말에 한 표를 더해본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 마을에 대를 이어 존재하는 마녀가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고자 하지도 않고 실제로 누가 그랬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마녀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의 삶 자체가 주된 포인트다.
책은 각 파트마다 마녀의 주변인물이 중심이 되어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전 파트의 주변인이 다음 파트의 주인공이 되는 방식으로 라쇼몽 효과(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해석해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와 비슷한 듯 다르다.
앞선 파트에서는 특정 화자의 입장에서 다른 인물의 행동을 보게 되지만 다른 파트에서는 그 인물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게 되는 식이다. 그 파트들을 이어 가다 보면 전체 내용은 그러니까 독자만이 유일하게 알 수 있다.
또한 어찌나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는지 흠칫 놀라기도 하는데 그 점 때문에 더욱 몰입이 된다. 적나라한 욕과 묘사가 라틴 문학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삶 자체는 늘 빈곤하고 마약에 노출되어 있으며, 폭력과 폭언은 항상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닌다. 삶이 궁피하고 힘들어질수록 누군가를 증오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더욱 구렁텅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반복들. 보통의 사랑이나 애정은 기본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 악다구니와 욕설만이 각 인물들이 존재할 수 있는 무기다.
특정 개인만이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삶이 그렇다. 그래서인지 어떠한 희망과 기대도 보이지 않는데 마녀는 그 동네에서 이런 얘기를 들어주는 존재이자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마녀의 죽음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마녀의 죽음 이전에도 이후에도 빈곤과 폭력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은 결국 모두를 파멸로 이끈다.
책 읽는 동안 각각의 인물에 빙의되어 끝없이 추락하다가 다 읽고 난 뒤 겨우 현실을 깨닫고 안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에겐 삶이란 무엇이었을까를 떠올려봤다. 나에겐 또 삶이란 무엇인지.
마지막 파트는 화장터에서 시체들을 바라보는 노인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노인은 시체들을 묻으면서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이 책이 왜 작품성이 있다고 하는지 혹은 수많은 논란을 야기시키는지는 이 대사에 함축되어 있다고 개인적으로 느꼈다.
"고난의 삶이 이제 끝났으니 어둠도 곧 사라질 거요.
그러니 더 이상 두려워할 게 뭐 있겠소.
겁낼 것도 초조해할 것도 없으니까. 거기가 편안하게 누워계시오. 이제 비도 당신을 괴롭힐 수 없을 거고 어둠도 영영 계속되지는 않을 거요. 보셨죠? 저 반짝이는 빛 여러분이 가야 할 곳은 바로 저기오.
저기가 바로 이 구덩이에서 빠져나가는 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