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회식 문화에 관하여
하늘은 높고 날씨는 한 없이 좋은 까닭에 각 팀 별로 워크숍이 추진되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가지 못했는데 상황이 완화되면서 다시 시작된 것이다. 특히, 10월 마지막 주를 전후로 많이 갔다. 어떤 팀은 산으로 가고 어떤 팀은 전시회를 관람하고 또 다른 팀은 기차를 타고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고도 했다. 우리 팀은 당초에는 오전에는 업무를 하고 오후에 나가 간단히 산책을 하다가 저녁을 먹는 단출한 코스였는데 워크숍을 장려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서 아침부터 가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다행히도 산을 가거나 하염없이 걷는 대신 영화를 보고 산책 후 밥을 먹는 코스가 정해졌다. 참석여부는 자유의사였지만 일이 남아 가지 못하는 직원들 빼고는 모두 참석하였다. 내심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지난번 회식 때 일이 생겨 참석하지 못한 탓에 이번에도 빠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워크숍 당일이 되자 평소보다 조금은 늦게 일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전날에는 그냥 사무실에 있다가 퇴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는데 또 막상 밖으로 나오니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다들 사무실에서는 격무에 시달려 말도 없이 자기 업무를 하느라 바빴는데 밖으로 나오니 확실히 활력이 돋고 별 말 아닌 것에도 까르르 웃게 되었다. 서로에게 이런 면이 있음을 놀라워하면서. 마침 가을 날씨도 좋아서 여러모로 괜찮았다. 특히, 같은 사무실을 쓰더라도 업무적으로 관련이 없으면 말할 기회가 거의 없는데 함께 걸어가면서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니 그동안 사무실에서 얘기를 못 나눴던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친해지게 되었다. 아 이래서 워크숍을 추진하는구나. 가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기분 좋게 떠들며 밥 먹는 장소까지 이동했는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식당에 자리 잡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오전에 본 영화에 대해서 혹은 찍은 사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뒤늦게 합류한 직원이 갑자기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자고 제안했다. 말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목하면 그 사람이 말을 하자고.
사회 초년생 때 아니 굳이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코로나 전이었을 때 팀장은 회식 때마다 항상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을 시키곤 했다. 새로 이 팀에 오거나 나가는 등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그나마 할 말이 있을 텐데 그런 것 없이 회식을 하면 어김없이 무조건 돌아가면서 한 마디를 시켰다. 인원도 적은 편은 아니었는데 기여코 그 인원들이 다 돌아가면서 한 마디를 해야 회식이 끝났기 때문에 회식은 먹고 마시며 모처럼 업무 얘기를 벗어나 얘기를 나누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 늘 긴장하고 신경 쓰이는 자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기피했다. 그러나 또 빠질 수는 없었다. 빠지면 빠질 수 없는 사유가 분명히 필요했으므로. 그리고 그렇게 되면 또 모두에게 공유되므로 차라리 그냥 참석하는 게 나았다.
자기 차례가 되기 전까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계속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 긴장하며 말을 잘하지 못하는 직원들을 보는 것도 곤혹이었다. 누구는 그런 자리에서 말을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도 있지만 비교적 내성적이거나 어색해하는 직원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 상관없이 모두가 한 마디를 해야 했다. 팀장을 제외한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누구든 이 회식이 빨리 끝나가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차례가 지나가면 안도하고 다음 사람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그야말로 누굴 위한 회식인지 모를 그런 시간들이었다. 그 이후 코로나로 회식이 뚝 끊겼는데 코로나로 인한 장점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다시는 그런 불편한 자리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런데 다시 재개된 워크숍에서 그리고 이어진 회식에서 다시 반복되다니 소름 아닌 소름이 돋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팀장의 주도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팀장의 묵인 아래 밑에 있는 직원이 같은 직원들을 종용하며 한 마디씩 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하라고 다들 넘겼지만 굳이 시켜야겠다는 말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음이 되면서 지목 배틀이 시작되었다. 처음 자유롭게 먹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지금부터는 차례가 된 한 사람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일어서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 유쾌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지목을 받아 할 수 없이 일어나야 했을 때 내 옆,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자기를 지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들 앉아서 자연스럽게 얘기는 해도 전체 회식에서 일어나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얘기를 해야 하는 것에는 확실히 부담을 느꼈다. 나 역시 억지로 해야 하는 이 문화가 불편했다.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일어나 앞부분에는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고 뒤에는 지목해서 하는 것은 저를 마지막으로 하고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말하는 것으로 하자고 했다. 이런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졌고 그렇게 나를 마지막으로 없어지는 듯했다.
그러자 처음에 시작했던 주도자는 그 사이 술이 더 취해서 모두 다 해야 한다고 우겼다.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치를 봤지만 팀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지목이 아닌 아예 순서가 정해졌다. 자기 순서가 되면 한 마디씩 해야 했다.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문제는 새로운 신입 직원이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이었는데 안 그래도 평소에 조용하고 말이 없었는데 이런 자리가 부담스러워 보였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더 어린 이 직원은 올해 입사해 그야말로 사회를 처음 배우는 시기였다. 그런 직원이 접하는 첫 회식이 이런 문화이면 안됐다.
그 신입 차례가 됐을 때 나를 비롯한 우리 쪽에 있는 사람들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게 하자고 말했다. 그런데도 주도자는 계속 신입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우겼다. 우리는 중재안으로 신입의 의사를 듣고 결정하자고 했고 신입에게 물어보니 하고 싶지 않다고 작게 말했다. 우리는 이 신입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예 이 문화를 없애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이것 만큼은 저지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의 강력한 항의 탓에 이 신입은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두 차례가 돌아가고 나자 주도자는 또 한 번 신입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고집했고 우리는 또 한 번 저지했다.
내가 사회 초년생 때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의 회식은 늘 이런 식이었다. 회식을 빠지려면 아무리 개인적인 사정이라도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대야 했으며,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 없는지 술잔을 체크당해야 했다. 또한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목되거나 자기 차례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한 마디씩 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 다치거나 혹은 약을 먹고 있어서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면 술을 먹어야 소독이 된다고 먹으라고 하는 환경이었다. 신입 직원의 속마음을 들어보고 싶어서 한 마디하라는 것은 내가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들었던 멘트까지 똑같아 소름이었다. 속마음을 이런 공개 석상에서 모두들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한다는 발상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확실히 악습은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신입에게는 그런 환경을 물러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악습 아닌 악습은 우리 대에서 끊어야 했다. 우리도 그런 시기를 겪었으니 너희도 겪는 게 당연하게 아니라, 짬바가 생기고 면역이 생겨 나는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게 아무렇지 않으니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싫었던 만큼 그런 문화를 없애는 일에 조금이나마 일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회식이 끝이 났다. 어쩐지 이런 회식은 이번 한 번만이 아니라 계속될 것 같았다. 팀장의 마지막 말이 주도자에게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에 모두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다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주도한 직원이 잘해주었다고. 이럴 때 속마음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사실 회식은 아무런 죄가 없다. 맛있는 음식을 동료들과 먹으면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누는 것은 오전 영화를 보면서 식당까지 걸으면서 확실히 느꼈다. 그동안 회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회피하게 된 건 그동안 겪어왔던 회식들이 다 이런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알았다. 회식을 싫게 하는 건 그러한 악습을 계속 이으려는 사람, 그것을 묵인하는 구체제의 사람들 그리고 그런 강압적인 방식이 직원들 간 화합을 도모한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 노력하면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사회를 배워가는 직원이 우리처럼 회식에 대한 인식을 좋게 가져갈 수 않도록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