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와 인생

무엇이든 미루면 안 되는 이유

by 임진

갑자기 화장실 불이 켜지지 않았다. 전구의 수명이 다 닳은 것이었다. 그때 바로 바꾸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귀찮았고 '좀 있다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 시간은 흘러 흘러 일요일이 되었고 그제야 전구를 사러 나갔다.


바로 사와서 갈아 끼울 수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전구를 사는 과정은 험난했다. 원래라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문구점에서 같은 종류의 전구를 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 문구점은 일요일마다 문을 닫았고 나는 그 점을 간과했다.


하는 수 없이 집 주위 문구점, 다이소, 편의점 등으로 같은 종류의 전구를 사러 돌아다녔다. 당연히 다른 곳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한 군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동네에서 좀 멀리 떨어진 대형 규모의 마트도 갔었는데 역시 같은 종류의 전구는 없었다.


요즘은 전구를 잘 쓰지 않아서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모든 곳에서 팔 줄 알았던 전구는 집 앞 그 문구점에서만 팔았고 그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걸 미리 알았다면 귀찮더라도 토요일에 샀었어야 했다. 으레 당연히 살 수 있겠지라는 막연함이 그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화장실 전구 없이도 며칠을 지낼 때는 몰랐는데 갑자기 내가 사야 할 때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 전에는 언제든지 사려고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내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환경에 놓이니 답답해진 것이다.


내가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큰 차이였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바로 돼'라고 생각하고 무엇이든 잘 시도하지 않았다. 내가 언제든지 때가 되면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미루다가 내가 이제 뭐를 하려고 하면 어쩌면 그때는 타이밍을 놓친 뒤일지도 모른다. 이미 찾아온 기회를 잃고서 후회로 가득할 수도 있다. '미리 할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라며.


월요일 아침 어둠 속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저녁이 되어서 전구를 사서 갈아 끼웠다. 화장실 불이 다시 켜졌을 때의 환함은 어떤 빛보다도 밝았다. 원래 이렇게 환했었나 싶은 것이 속이 다 시원했다. 대가를 치르고 겨우 얻은 빛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앞으로는 무엇이든 미루지 않고 가능하면 할 수 있을 때 바로바로 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이번에는 소중함을 알고 다시 빛을 얻을 수 있었지만 다음에는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불이 꺼지면 바로 전구를 깔아 끼울 수 있도록 여분의 전구도 샀다. 다음을 위해 미리 계획하는 습관도 덩달아 들여야겠다. 이렇듯 삶은 끊임없이 깨달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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