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기록하기
새해의 시작과 함께 KT장기 고객 서비스로 밀리의 서재를 한 달 동안 이용하게 되었다. 원하는 모든 책이 다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원하는 책들이 즐비했고 배터리가 꺼지지 않은 한 핸드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책 읽기에 불이 붙으니 밀리의 서재에 없는 책들은 서점이고 도서관이고 찾아 읽게 되었다.
그리하여 1월 3주 차가 된 지금 벌써 13권의 책을 읽었다. 따지고 보면 1주일에 4~5권씩을 읽은 셈이다. 그동안에도 책을 안 읽은 것은 아니지만 출근길에 잠깐 읽다가 말다가 해서 거의 1주일당 한 권씩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출, 퇴근길은 물론이고 퇴근 후 잠자기 전 눈이 감길 때까지, 회사에서도 아직 연초라 그리 바쁘지 않아서 좀 한가한 시간이다 싶으면 떠들고 노는 대신에 책 읽는 것을 선택했다.
주로 읽은 분야는 추리, 스릴러 소설 분야였으니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못 참기도 했지만 확실히 작가의 다른 책들을 바로바로 볼 수 있으니 흐름이 끊기지 않아서 계속 읽기 모드가 유지되었던 것 같다. 또한 김훈 작가의 '하얼빈'을 읽을 때 초반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는데 이 책만 읽지 않고 비교적 가벼운 책을 함께 읽으면서 다소 무거운 내용과 가벼운 내용을 교차해 읽으니 모두 완독 할 수 있었다. 짧은 기간 여러 권 완독하는 짜릿함을 느끼니 조금만 남았을 때는 스스로와의 타협으로 좀 더, 좀 더 하며 읽어 나갈 수 있었다.
그동안 책을 좋아해 꾸준히 읽어 왔지만 이번처럼 공격적이고 전사적으로 읽은 적은 없었다. 그동안 책 읽는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서 시간이 없어서 많이 읽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내 안에 어떤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찾아보면 방법은 있었는데 다만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 그래도 이제라도 할 수 있게 되니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여유로운 연초를 보낸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은 만큼 장점도 알게 되었다. 먼저 세상사 시름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지금 둘러싼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이 이어져 결국 스트레스로 귀결되는데 확실히 책에 빠져드니 쓸데없는 걱정 따위는 다소 접어둘 수 있게 되었다(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 스스로를 옥죄기만 했다) 또한 그동안 유튜브를 많이 봤는데 확실히 그 시간이 줄었다. 유튜브를 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감각형, 소비중심적인 영상에 빠지면 더 감각적인 것, 더 소비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는데 확실히 책으로 관심을 돌리면서 이제는 필요할 때만 볼 수 있는 자제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면 새해부터 쓰기 시작한 다이어리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거의 작정하고 쓰는 것이 처음인 다이어리에 무엇을 채울까 고민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책들, 완독한 책들을 기록해 놓으니 내용이 채워짐은 물론 효율적인 책 읽기 관리도 되었다. 읽고 쓰고 정리하는 것들의 콜라보라고나 할까. 이전에는 책을 읽고 인상적인 책들만 일부 블로그에 적고 그 외에는 따로 기록해 두지 않아 한 달, 1년에 얼마나 읽었는지 가늠하지 못했다. 그렇게 기록이 없으니 나중에는 한 번 읽었던 책을 읽지 않은 줄 알고 보다가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인데 하고 착각하기도 했었다. 읽는 만큼 기록의 중요성도 함께 깨달았다.
또 하나 완독하는 습관이다. 중간에 내용이 흥미롭지 않더라도 끝까지 읽어 마지막 장을 덮으니 여운이 이어지는 책도 있었다. 존 그린의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가 그랬다. 주인공 에이자는 잘 살았다는 내용이 있지만 다시 볼 수 없는 데이비드와 노아는 잘 살고 있을까 갑자기 걱정되었다. '아 이래서 한 번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봐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이 프로젝트를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물론 다시 바빠지고 환경이 달라지면 지금처럼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연초에 다져놓은 이 근육을 잘 다지고 나가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이다. 조금의 자투리 시간과 핸드폰만 있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마침 또 한 번의 설날이다. 물리적인 해가 바뀔 시점에 세웠던 계획이 다행히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다. 그냥 우연히 얻게 된 '밀리의 서재 1달 무료 이용권'과 역시 우연히 얻게 된 '스벅 다이어리'를 이용하다 보니깐 계획이 아닌 계획이 되었고 결과는 내 생각보다 더 나타나고 있다.
삶도 그럴 것이다. 무엇인가를 계획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계획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들어온 기회를 잘 이용하면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계획이 세워지고 행동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렇듯 삶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2023년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