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게 노년을 즐기는 법
아빠가 퇴직하신 후 부모님께서 지방에서 이곳 서울로 올라오셨다. 조카들을 돌보기 위함이었다. 한평생 자리 잡았던 지역을 떠나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도권으로 올라오실 때에는 적지 않은 망설임이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을 선택하셨고 당신들이 30년 이상 쌓아오신 기반은 저 멀리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평생 회사 생활을 하신 아빠가 갑자기 일이 없어진 것에 적응하실 수 있을는지, 친구들 지인들을 터나 비슷한 또래가 없는 지역으로 오신 엄마는 또 어떻게 지내실 수 있는지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아빠는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회사생활에 전념하시느라 제대로 된 취미 생활을 가져본 적이 없으셨는데 퇴직 후 시간이 나게 되니 본격적으로 색소폰을 배울 수 있었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셨는데 현생을 사시느라 전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 역사를 좋아하셨던 흥미를 살려 서울 주변의 왕릉이나 유적지 등을 방문하시면서 지방에서는 쉽지 않았던 일을 꾸준히 해 나가고 계신다. 또한 당신이 주장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관련 집회에도 참여하시고 지역 축제, 음악이 나오는 곳이면 이곳저곳 찾아다니시며 누구보다 즐겁게 노년을 즐기고 계신다.
엄마는 또 어떠한가? 트로트 프로그램을 보고 한 가수의 팬인 엄마는 서울에 와서 거의 처음으로 콘서트 장에 가볼 수 있었다. 그동안 지방에 있는지라 접근성이 떨어져 서울에서 하는 콘서트는 엄두를 내지 못하셨는데 가까운 곳에서 하니 가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나 들떴는지 콘서트 가는 전날에 미리 그 장소를 가보며 얼마나 거대한 장관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계속 설명해 주셨다. 10대 때 아이돌을 따라다니던 우리 세대 저리 가라일 정도로 열성적인데 이제는 그 가수가 나오는 행사나 축제에 다녀오시기도 한다. 그동안 봤던 엄마의 모습 중 가장 생기 있어 보인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현실의 피곤함을 짊어지고 사는 것은 나인 것 같다. 엄빠는 누구보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시며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해보고 있는데 기존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걱정했던 것이 머쓱하게 느껴진다.
수많은 변화의 파도가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그 변화에 맞게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나도 엄빠의 이 놀라운 적응력을 본받아 어떤 변화에도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엄빠의 슬기로운 노년생활을 적극 지지하며 앞으로 좀 더 잘 즐기실 수 있도록 서포트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