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책방 이용기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름 내 입었던 옷들을 옷장 한 구석으로 몰아넣고, 이 계절부터 본격적으로 입게 될 옷들은 앞쪽으로 배치했다. 이불도 두툼한 것으로 바꾸면서 전기장판도 언제든지 켤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다. 그러면서 평소 잘 쓰지 않는 물건들도 정리했다. 그런데 책이 문제였다. 예전 집에서 살 때 책을 계속 쌓아두는 바람에 책벌레가 온 집안을 뒤덮었던 터라 새로 이사 온 집에는 절대 책을 많이 두지 않겠노라 늘 다짐해 왔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예전보다는 책의 규모가 대폭 줄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선물을 받거나 어디서 왔는지 모를 책들이 집에 쌓이기 시작했다. 작은 책장이 있어 일부 책들은 거기 둘 수 있었지만(목표가 여기에서 벗어나는 책을 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새 책장을 넘어서는 책들이 생겨났고 벽 한쪽에 혹은 지나다니는 길목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책벌레의 공포도 재생됐지만 미관도 좋지 않았다. 처리해야 했다.
일단 굴어다니는 책들을 한쪽에 모은 뒤 가장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책들을 골랐다. 책을 비교적 깨끗하게 보는 편이라 완전 새것 같은 책들이 많았다. 동네 도서관에 기증해야 할지 아니면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할지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검색해 보니 동네에 헌책방이 있었다. 그것도 길만 건너면 바로 갈 수 있는 코앞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신도시라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가게들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바람에 언제부턴가 새롭게 생긴 가게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일을 그만두었는데 그 사이 헌책방이 생겼던 것이다. 반가웠다. 책을 팔 수 있는 것도 반가웠지만 동네에 이런 책방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몇 주 전, 동네에 있던 서점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었다. 대신 다이소가 들어섰는데 서점일 때 그렇게 없던 손님들이 다이소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자꾸 책과 관련된 가게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헌책방이라니.
시스템에 따라 책을 찍어 보내고 견적을 받았다. 보통 책 값의 10퍼센트 정도로 가격이 책정되었는데 그 기준은 책이 최상의 기준일 때이며 직접 가지고 와서 봤을 때 흠이 나있거나 지저분하면 가격은 좀 더 깎인다고 했다.
책을 싸들고 헌책방에 가서 책을 직접 보여줬다. 대부분은 원래 가격 그대로 받았고 한 개는 언제 묻었는지 모를 잉크가 묻어져 있어 몇 백 원, 한 권은 너무 오래된 티가 나서 몇 백 원 깎였다. 그렇게 책들은 건네졌고 책 값을 통장으로 받았다. 파는 재미가 있었다. 나에게는 불필요해져서 내 손을 떠났지만 누군가 이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보고 좋은 기운을 받길 바랐다.
일련의 과정이 끝난 후 책방을 둘러보니 깔끔하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예전 헌책방이라고 하면 쓰러질 듯 책을 세우고 그다지 정리도 되지 않는 곳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이곳은 작가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고 구할 수 없는 레어템의 책들도 곳곳에 숨은 보석처럼 숨어있었다.
책을 팔고 살 수 있으며 앉아서 시간당 가격을 내면 차 한잔과 함께 책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책을 파는 목적이어서 책만 팔고 왔지만 다음 시간이 넉넉할 때 찾아가 차 한잔과 함께 숨은 보석들을 찾아볼 셈이다.
동네에 헌 책방이 생겼다는 것은 이다지도 또 다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부디 오래 머물러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