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진실 게임
어린 시절 인기 있었던 미국 드라마 중에 ‘V’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외계인이 지구를 정복하려고 한다는 흔하디 흔한 소재였는데 특이한 점은 그 외계인이 파충류라는 것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인간으로 위장을 하고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피부를 한 꺼풀 벗겨내면 초록색의 징그러운 파충류 피부가 그대로 드러나는 외계인.
그들은 그렇게 우리와 똑같은 가면을 쓰고 우리와 똑같이 먹고 마셨으며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파충류 외계인인지 전혀 모를 정도로.
이따금씩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에 난 무언가에 시선이 쏠리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지금 보고 있는 내가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나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는‘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를 철저히 구분해서 생활하는 어린 소녀 ‘진희’가 등장하는데 그 어린 나이의 진희가 해던 것을 나는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긴 시간 동안 해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웃고 떠들고 대화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니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어둠이 주는 외로움에 몸서리 쳐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피곤함에 지칠 법도 하건만 불만 켜 둔 채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앉아 그 적막함과 외로움의 한가운데에 나를 조용히 세워 봅니다.
어디까지, 언제까지,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지 가늠도 해 봅니다. 그리고는 조금 전까지 사람들 앞에서 밝게 웃고 얘기하던 내가 진짜 나인지, 외로움과 적막함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내가 진짜 나인지 고민해 봅니다.
그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 없고, 그 누구에게도 멋있게 보일 필요 없으며, 그 누구에게도 강해 보일 필요도 없는데 왜 솔직한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지, 왜 그렇게 가면을 쓰려고 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나만 그런 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 나와 함께 웃고 얘기하며 같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혹은 집에 들어서면 답답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처럼 적막하고 외로움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켜 놓고는 항상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도 그 사람들도 무엇 때문에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내려놓고 남들 다하는 대로 가면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가, 그러니까 그림을 기똥차게 잘 그리는 사람이 내 초상화를 그려 준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집니다. 남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 있는 남이 보는 나일지, 모든 것을 벗어놓은 나의 본질 그대로 일지 궁금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보단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겠네요.
아니,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이든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김치라든지 치즈와 같은 것을 강요하면서 억지로 입 꼬리를 올리는 미소를 강요하지만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본질은 어쩌면 태생적으로 외로움일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