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참 별거 없는지도 모른다

by 알케이

몇 년 전의 초여름이었을 게다.

우리나라 녹차 시배지라는 경남 하동이란 곳을 갔었더랬다.


보성과는 또 다른 녹차 밭의 풍경을 보며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어느 初老의 노인 한 분이 지팡이를 짚으며 쉬엄쉬엄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아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불현듯 혹은 갑자기-이 단어들은 언제나 '반전'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분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찡해졌다. 카메라에 담고 싶어 졌다는 뜻이다.


그의 두 어깨나 너무도 가벼워 보여서였을까.


30살에는 그저 제목 때문에 혹은 노래가 좋다고 '느껴져서' 아무 생각 없이 들었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가사의 의미를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릴 줄 알게 되어 버린 지금의 나이에 불현듯 그 노인의 뒷모습이 떠 오른 것은 왜일까.


개인적으로 아직도 최고의 드라마로 꼽는 추적자에서 황반장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사는 게 참 별 기 없다, 그쟈? 처음에 서울 올라올 때, 남들맹키로 폼 나게 살고 싶었데이. 사는 기 신산스러워도 요 고비만 넘기면 될 낀데, 요 고비만 넘기면 진짜 내 인생이 시작 될 낀데 하고 50년을 넘게 안 버팄나. 그칸데 지나고 보니 그 고비고비가 다 인생이었는기라. 내가 살고 싶었던 인생은 영원히 몬 사는 기다."


한창 혈기 왕성할 때 하긴 싫은 하지 않고 살겠다고 혼자 다짐한 적이 있었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핑계 같지 않은 핑계를 대며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어도 최소한 하기 싫은 것은 안 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달고 다니던 그런 때였다. 하지만 생활 계획표도 계획대로 안 되는데 사람 일이라는 게 어디 계획대로, 마음먹은 대로만 될 수가 있겠는가. [1]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 놈의 먹고 산다는 게 뭔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살아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순간이 고비였다. 이 번만 넘기면, 이 위기만 넘기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지나가면 또 오고 지나가면 또 오는데 이 것 또한 지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었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돌이켜 보면 그런 위기와 고비의 순간이 다 내 인생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은행에 적금 쌓이듯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고, 다시 말하면 과거의 나는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나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부끄럽다고, 지워버리고 싶다고 그 때의 내가 내가 아닐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0대는 그 나이의 경험과 사고의 폭으로 30대는 그 나이의 경험과 사고의 폭으로 40대는 역시 그 나이의 경험과 사고의 폭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20대 때 40대의 경험과 사고의 폭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면 꽤나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랬다면 지난 시간 위에 존재하고 있었던 위기와 고통의 순간들을 보다 여유롭게 대처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그 때의 어설펐던 나도, 미래의 내가 보면 여전히 어설플 지금의 나도 여전히 나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따금씩 하동에서 본 그 뒷모습을 보며 한참을 생각한다.


30년 後의 나는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고비와 위기가 그 때의 나를 만들었다며 웃고 있을까. 지금의 내가 참 많이 어설펐다고, 아직 많이 성숙하지 못했었다고 조용히 얘기하고 있을까.


[1] 드라마 추적자 中 대사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