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으면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1)

경남 고성에서

by 알케이

TV에서 그 곳을 봤을 때 무조건 저 곳은 가봐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TV에서 본 그곳의 돌담 길은 부끄럽지만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돌담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돌담을 양 쪽에 두고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해 봄의 끝 무렵 저는 그곳을 향해 떠났습니다.



경남 고성에서 저를 맞이해 준 것은 보리 밭이었습니다.


바람결에 몸을 싣고 살살 흔들어대는 그네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진짜로 서울을 떠나 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을 줄곧 살아온 서울이지만, 그곳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삶을 계속 살아왔지만 그냥 번잡스럽고 머리 아프고 복잡하기만 할 뿐 정 붙이고 살기가 어려운 곳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서울을 벗어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입니다.



보리밭을 지나 학동마을 (학림리)로 들어서면 드디어 그렇게 보고 싶던 돌담길이 눈에 펼쳐집니다.

얽기 설기 엮은 것 같은 돌 사이사이에 황토를 쌓아 올린 돌담 길은 평일 오후라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아 고즈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손가락으로 살며시 담을 이룬 돌과 흙을 만져 봅니다.

돌은 돌처럼 딱딱하고 흙도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굳어서 딱딱합니다. 돌도 흙도 이렇게 딱딱한데 어떻게 이처럼 따뜻한 느낌을 만들어내는지 신기합니다. TV에서 보던 그 느낌보다 훨씬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학동마을에는 돌담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최씨 고가’라고 불리는 [고성 학림 최영덕 씨 고가]가 있습니다. 서기 1670년경 전주 최씨 선조의 꿈속에 학(鶴)이 마을에 내려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자 날이 밝아 그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명당이라 믿고 입촌, 학동이라 명명하면서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로 전해지고 있어 이 최씨 고가는 이 마을의 중심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곳까지 와서 최씨고가를 보지 않고 가는 것은 팥 없는 찐빵을 먹은 것과 마찬가지인 거지요. 그래서 그곳을 향해 천천히 돌담 길을 걸었습니다.


건축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왔다면 돌담 길에 대한 뭔가 심오한 비법을 떠올렸을 테고, 문인이 왔다면 뭔가 의미 깊은 생각을 의미 깊은 단어로 표현했겠지만 이런저런 재주도 없는 저이기에 그냥 따뜻한 햇살을 품에 안고 부드러운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최씨 고가로 향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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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뿔싸. 목적에 도착하고 나니 대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학동마을까지 와서 최씨 고가를 보지 못하고 갈 수밖에 없게 되었네요. 안타까운 마음 한 가득이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기로 합니다.


돌과 흙으로 된 벽을 뚫고 자란 신기한 빨간 장미도 보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힘겨운 듯이 벽에 기대어 쉬고 있는 지게도 눈에 들어옵니다. 서울이라면 어느 것 하나 보기도 힘든 모습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려고 작정한 것처럼 등장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떠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겠지요.



그렇게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한 마을 주민 아저씨가 사진 찍기 좋은 곳을 몇 군데 알려주셨고 그 아저씨가 얘기해 준 곳에서 이리저리 각도를 잡아보는데 아저씨가 질문을 합니다.


“최씨 고가는 봤어요?”

"아니요, 잠겨 있던데요?"

"그래요?"


그리곤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열쇠 꾸러미를 들고 나타나서는 앞장서 가더니 문을 열어주시는 겁니다! 주인 분이 여기 살지 않아서 집 관리 차원에서 열쇠를 마을에 보관한다고 하니 이 아저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눈 앞에서 명소를 보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다는 생각에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고이 또한 여행이 주는 또 다른 묘미이며 재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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