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골목에서 (1)

서울 중계동 104번지.

by 알케이

서울 중계동 104번지.

그래서 백사 마을이라고 불렸던 곳.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던 곳.


그곳이 곧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변하기 전에 찾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대체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는 어떤 곳일까? 무엇이 그곳을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부르도록 만들었을까라는 궁금증을 안고 1142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종점에 내려 올려다 본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이 험악했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비가 올 때까지는 돌아다녀 보자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느 지역이나 동네를 가서 사진을 찍을 때 개인적인 철칙으로 삼는 곳이 그곳에 거주하는 분들에게 폐가 되지 말자라는 것입니다.


나는‘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별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왔지만 살고 계신 분들은 그 별명을 싫어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예의를 갖춰 조심스럽게 사진에 담아 기록을 남기자라는, 크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름의 규칙입니다.



백사마을에서 첫 번째로 받은 느낌은 ‘텅 빈’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주인을 잃어 아무도 살지 않아 노원 경찰서의 특별 순찰구역으로 지정되어 ‘공가’라는 노란색 스티커가 붙어 있는 수많은 빈 집과 더 이상은 장사를 하지 않는 가게, 21세기 첨단 문명의 이기에 퇴색되어 버린 비디오 가게, 그리고 낡고 허름해져 더는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곳에 흘러 들어와 삶을 영위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떠났고, 그래서 적막감이 흐르는 곳이라는 느낌.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 의해 버려졌다는 뜻일 테고, 그것은 다시 그만큼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많이 존재한다는 뜻일 겁니다.


관리되고 보호되지 않아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그저 방치될 뿐이지요. 하지만 어디 건물만 그렇겠습니까. 사람의 마음도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순간 수많은 생채기가 그대로 남아 아물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지요.


당신 지금 상처가 많이 남아 있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사 마을에 받은 두 번째 느낌은 따뜻함이었습니다.


텅 비어버린, 그래서 적막감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따뜻함을 느낀다니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찌 됐든 사람이 사는 곳이고, 사람이 살고 있으니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이 있을 것이고 또 그런 정이 있다 보니 따뜻함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됩니다.


사진을 찍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을 시선을 돌리니 짐을 싣고 나르는 오토바이가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토바이가 대기하고 있는 집이 이사를 가는지 살림살이를 던져 넣으면서 나는 소리였는데, 이삿짐센터가 보통인 세상에서 저렇게 짐을 나르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찡하기도 합니다.



특히 오토바이 아저씨와 주인 아주머니의 대화가 싸우는 듯 하지만 다정함이 묻어나는 게 마치 부부 혹은 남매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오고 가는 퉁명스러움 속에 묻어 있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쌈지마당도 있습니다. 마당이라고 하기엔 살짝 크고, 공원이라고 하기엔 꽤나 작은 이 곳은 동네 사는 분들이 나와서 이런저런 관심사도 공유하고 누군가의 안부도 묻는 이를 테면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인데, 이 곳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고향까지의 거리가 얼마인가를 알아보는 방향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석에는 특이하게도 거리가 킬로미터가 아닌 ‘리’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주민들이 이 쌈지마당에 나와 방향석을 보면서 ‘내 고향은 말이야’라고 얘기하면서 대화를 나누겠지요. 어린 시절 있었던 성장통에 대해서도 얘기하겠지요. 그렇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따뜻함이 있겠지요.


장독대도 있습니다. 어떤 장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을 담근다는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이고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한 따뜻함이 담겨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쓰임새를 다한 연탄 더미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연탄은 희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자기 몸을 불태워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준다는 전형적인 의미의 희생이 아니라 어머니의 희생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아파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정집이 보일러로 교체한지도 시간이 꽤 흐른 90년대까지도 저희 집 할머니 방에는 연탄 아궁이로 방을 데웠습니다. 그래서 한 겨울이면 어머니가 한참을 주무시다가 새벽녘에 일어나 추운 날씨 때문에 두꺼운 옷을 입고 연탄을 갈고는 다시 잠을 청하셨던 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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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0년 가까이나 겨울만 되면 반복했던 어머니의 그 생활 속에서 저는 희생이란 단어가 떠 오릅니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인 ‘아랫목’이라는 것도 연탄 아궁이가 있었기에, 더 오래전에는 장작 아궁이였겠지만, 존재할 수 있었던 단어이고, 그 아랫목은 아직까지도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따뜻함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입니다.


어린 시절 그 아랫목에 아버지께서 퇴근하시면 드실 저녁밥을 따로 담아 이불에 덮어 보관하던 그때. 그래서 희생은 어쩌면 따뜻함을 내포하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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