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내는 방법에 대하여

by 알케이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떠졌다.


사실 눈이 떠진 것보다 의식이 먼저 돌아오긴 했었는데, 일어나기 싫어 이불속에서 꼼지락 거리기를 10여분이나 했을까. 살며시 떠진 눈으로 보니 방안이 아직 어두운 것이 오늘은 평소보다 좀 일찍 잠이 깼나 보다 싶었다.


백수가 됐으면 좀 느지막이 일어나주는 게 미덕이건만, 이놈의 몸뚱아리는 지칠 줄도 모르게 매일 같은 시간에 날 깨워댔는데- 심지어 알람을 맞춰놓지 않고 잠들어도 일어나 보면 항상 그 시간이다- 오늘은 그것도 모자라 좀 더 일찍 나를 깨운 모양이다.


그래서 잠을 좀 더 자볼까 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꼼지락거리다 태생적으로 한 번 잠이 깨면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신체 구조 상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습관적으로 창문을 살짝 열어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비가 와서 어두웠던 건가 하고 시계를 보니 늘 일어나던 그 시간. 정확했다. 그래, 비가 와서 어두웠던 거였다.



노트북을 켜고 하얀색 바탕에 까만색 커서만 깜박이는 화면을 마주했다.

이미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와 있던 터라 뭔가를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그저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종이에 쓰면 좀 더 나으려나 싶어 노트북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이면지 뭉치와 연필을 꺼내 노트북의 자리를 대신했지만 역시나 딱히 무엇이 써지지는 않았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기는 하는데 그것이 글자라는 매개체로 시각화되지 않고 그냥 떠돌기만 할 뿐이었다.


연필을 내려놓고 다시 창가로 가서 창문을 살짝 열었다.

비 오는 평일, 주택가 골목길은 조용하다.

아마, 비가 와서 더 조용한지도 모르겠다.


오 가는 사람도, 오가는 차도 없이 그저 건물의 유리창과 아스팔트 위로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사실 이럴 땐, 아니 이런 감정의 상황에선 비가 ‘내린다’고 해야 할지, ‘쏟아진다’고 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떨어진다’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한 참을 빗소리만이 채우고 있는 골목길을 내려보다 불안한 마음에 다시 창문을 닫았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 싶은 불안한 마음.



어찌 보면 죄책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쁘게 바쁘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며 시간을 보내면서도 문득문득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었다. 사실 정확히 ‘무엇’을 얻기 위해서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저 조금씩이나마 쌓여가는 통장 잔고가 주는 안도감과 매일 아침∙저녁마다 콩나물시루 같은 곳에 갇혀 이동하면서 그저 ‘나는 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라는 안정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 채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떤 사람은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 어떤 형태로든 스스로 답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달라진 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하루’라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졌고, 그렇게 시간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나 스스로에게 답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으면서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오늘 우리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원하던 내일이다’라든가 ‘Today is a gift, that’s why it’s called present.’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와 같은 수많은 시간에 대한 명언들이 ‘매일매일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알차게 보내야 한다’와 같은 강박을 만들고 그 강박들이 죄책감으로 우리를 짓누른다는 생각.


하.지.만.

하루를 보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해도, 밀린 빨래나 설거지 그리고 청소를 해도, 좋아하는 영화나 TV 프로그램만 보고 있어도 시간은 가고 그렇게 하루는 간다. 심지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누워만 있어도 그 위로 시간은 멋대로 흘러가고 날은 다시 어두워진다.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고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없다는 판단은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반드시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무엇보다 너무도 오랜 시간을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면, 그 속에서 과연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을 하게 댔다면,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하루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도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창문을 다시 열었다.

여전히 비는 오고 있었고, 골목을 오가는 사람 역시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변한 것은 편해진 마음과 줄어든 죄책감을 가진 나뿐이었다.

꼭 무언가를 하지 않고 이렇게 비가 오는 골목길을 그냥 내려다보는 것이 괜찮아졌다.


그리고 그렇게 하염없이 창 밖을 내다보다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이 골목을 오가 갔던 다양한 사람들은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김치전이라도 해 먹으려나?


Legg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