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16. 그 곳에서 너를 발견했다

너는 언제나 그 곳에 계속 있었던 거였어.

by 알케이

“참 멋있어요. 그쵸?”


바이올린 케이스에 동전을 넣고 돌아설 때 너는 날 보며 물었고 처음엔 나에게 하는 말인 줄 몰랐어. 입고 있던 옷, 쓰고 있던 모자, 신고 있던 신발 그 어떤 것도 내가 한국인이란 걸 나타내는 것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대뜸 한국말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주위에 동양인이 없는 걸 보고는 내가 물었지.

“저요?”


너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나처럼 바이올린 케이스에 동전을 넣고 돌아서며 물었어.

“괜찮으면 같이 돌아다닐래요?”

빈이라는 곳까지 왔지만 사실 딱히 할 것이 없었던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널 따라 걷기 시작했어.


“우리나라도 한복입고 거문고나 가야금을 연주하는 거리 연주가 있으면 예쁠 것 같지 않아요? 식상한 기타 같은 거 말고.”

함께 걸으면 네가 처음 건넨 말은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이런 말이었어. 그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 난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지.


그리고는 왕궁을 보고 시청을 지나 슈테판 성당을 둘러 보고 그 앞 광장에서 펼쳐진 또 다른 거리 공연을 보는 내내 너는 끊임없이 얘기했고 나는 끊임없이 들었지.


빈에 왜 왔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유명하다는 비엔나 커피를 마셔본 느낌이 어땠는지, 빈에 오기 전에 들렀던 여행지는 어땠는지, 파리보다 빈이 왜 좋은지와 같은 것들에 대한 얘기들이었는데 솔직히 고백하면 지금은 어렴풋한 기억으로밖에 남아 있질 않아.


함께 커피를 마시고 함께 트램을 타고 함께 돌아다니는 긴 시간 동안 들은 얘기가 어쩌면 이다지도 기억에 남지 않을 수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섭섭해하지 말았으면 해.


그래도 긴 머리와 빨간색 티셔츠, 하얀 반바지를 입은 너의 모습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스캔0001-1.jpg
스캔0002-1.jpg


빈 이후에 너를 다시 만난 곳은 부다페스트였어.

그 때도 여느 때처럼 특별한 일 없이 영웅 광장을 거닐고 있을 때, 그 곳을 오고 가는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고 흰 반바지를 입은 긴 머리의 너를 발견한 거야.


아는 척을 할까 말까, 다가가서 반가움의 인사를 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그만 두기로 하고는 그저 바라 보기만 했었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거든.


그리고는 이따금씩 여행지에서 네가 떠오르곤 했어.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에서, 돈콘과 돈뎃을 잇는 다리에서, 뉴욕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동경 칭징 정원에서, 슬로바키아의 어느 작은 골목에서, 와이탄에서, 인스부르크의 공원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실 때도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바라 볼 때도

하릴없이 산책할 때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때도-


긴 머리에 빨간 티셔츠와 하얀 반바지를 입고 수 많은 얘기를 들려주는 네가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어.


그래.

너는 언제나 그 곳에 계속 있었던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