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고백하건대, 여행을 하다 보면 이따금씩 길을 잃을 때가 있어요.
요즘 세상에 길을 잃다니,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사전적 의미의 길을 잃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테면, 원래 계획은 오늘 ‘그곳’으로 가야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화장실에 앉아 생각하다 보니 ‘그곳’보다는 ‘저곳’이 문득 가고 싶어져 ‘그곳’이 아닌 ‘저곳’으로 갑니다. 그렇게 ‘저곳’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나면 원래 계획했던 ‘그곳’으로 가야 하는데 ‘저곳’에서 가까운 ‘또 다른 곳’이 가고 싶어 지고 그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원래 가려고 했던 ‘그곳’과는 동떨어진 곳에 내가 와 있음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길을 잃었다’라는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여행이란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고, 또 계획한 것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불안하기도 합니다.
원래 계획했던 것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버린 나를 보며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때로는 무섭기도 하고요.
애초부터 뉴욕에서 뮤지컬을 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만, 그것도 온갖 비속어를 섞어가며 진행되는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타임 스퀘어를 걸을 때도, 42번가 주변을 산책할 때도 거리를 가득 메운 뮤지컬 광고판은 애당초 눈에 들오지 않았었거든요.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이름, 어셔 (USHER).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뮤지컬’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뮤지컬에, 거기에 탭 댄스가 유명한 뮤지컬인 시카고 (CHICAGO)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인 어셔가 빌리 (Billy)로 출연하다니, 내가 죽을 때까지 언제 다시 그의 모습과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싶어, 이건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그 짧은 시간 안에 불현듯 들었습니다.
길을 잃은 것이죠.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감동적이었어요.
물론 예상대로 온갖 비속어가 난무하는 영어 공연을 100% 다 이해하지 못했고, 뮤지컬 창법이 아닌 자신만의 R&B 창법으로 노래하는 어셔에게 적잖이 실망도 했지만, 세계적인 공연을∙ 뮤지컬의 본고장에서∙ 온몸으로 경험했던 감동이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련하게 남아 있거든요.
어쩌면 그때부터 일 거예요.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원래 계획했던 것과 무관한 곳에 있고, 원래 생각했던 것과 무관한 것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도 무덤덤해진 것이.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것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